매일신문

조기유학의 명암-(上)떠나는 아이들…매년 2배 가까이 늘어

휴학에 자퇴도 불사…겨울방학 앞둔 교실 '뒤숭숭'

"미국 프린스턴(Princeton) 대학이 목표예요."

지난달 대구시내 한 영어학원에서 만난 창민(가명·12)이는 장래 희망을 묻자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한 의사"라고 했다. 창민이는 요즘 오후 6시부터 밤 10시쯤까지 학원에서 두꺼운 SSAT(미국 사립 중·고교 입학시험)책과 씨름중이다.

이달 중순 엄마, 형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로 떠난다. "유학을 위해 한달전 초등학교를 '자퇴'했다"는 창민이는 "8살때 다녔던 미국 학교생활이 훨씬 즐겁다"며 벌써부터 들뜬 표정이었다.

▲줄잇는 조기 유학='상위 1%가 아닌 0.1%'를 갈망하는 부모와 아이들이 대거 '외국 교실'로 향하고 있다.

겨울방학을 앞두면 일부 학교의 교실은 뒤숭숭해진다. 아이들이 미국 사립고 등에 입학 인터뷰를 하기 위해 '학교 투어'를 떠나는 것도 이때쯤이다. 방학이 끝나면 소식도 없이 떠난 아이들이 꽤 있다.

수성구의 몇몇 초교에는 올들어 학교마다 15∼30명의 학생들이 외국으로 떠났고 그보다 다소 적은 수의 학생이 되돌아왔다. 수성구의 한 중학교 관계자는 "올해 조기유학을 떠난 15명중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은 30%정도에 불과했다"고 할 정도로 '조기유학생=성적우수자'는 옛말이 됐다.

유학원 상담자는 "주로 1, 2년 단기유학이 많지만 대학과 직장까지 해결하겠다는 장기유학 상담자도 꽤 있다"며 "5명중 4명은 부모보다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경우지만 상당수는 준비없이 무작정 떠나고 보자는 식"이라고 말했다.

초교생 남매를 뉴질랜드로 보낸 대기업 과장 김영조(가명.44)씨는 1년째 기러기 아빠 신세다. 아내와 함께 간 아이들은 항공료 부담 때문에 단 한 번도 귀국하지 못했다. 유학비용으로 6개월에 한 번씩 2,3천만원을 보냈고 지난 1년간 6천만 가까이 들었다. 김씨는 "몇년전 만해도 대기업 임원급이 아이를 보냈다면 요즘은 과장, 대리급까지 내려왔다"고 말했다. 실제 소규모 자영업자, 회사원, 공무원 자녀들의 조기유학이 크게 늘었다.

교육개발연구원이 지난 5월 학부모 3천6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0명 중 7명이 '자신의 자녀만 뒤 처지는 것이 아닌가'는 불안감을 느낀다고 응답, 조기유학이 특정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유학을 위한 유학(?)=조기 유학을 위한 고액과외도 성행하고 있다. 한 유학원 원장은 "엄마와 아이가 강남에 오피스텔을 얻어 학원에서 살다시피 하고 주말이면 대구 집과 서울 학원으로 KTX를 타고 출퇴근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강남의 유명학원 강사들은 조기유학생 출신의 해외 명문대 졸업자나 재학생이 상당수여서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유학 성공사례로 꼽히는 아이들을 보면 현지 고교 4년 동안 우리나라 고 3입시처럼 공부했다고 보면 된다"면서 "그런데도 무작정 '보딩스쿨(기숙사 학교)에 넣으면 관리가 된다' '영어가 출중하니까 ESL(어학연수)과정이 필요 없다'는 식으로 믿는 부모들이 있다"고 했다. 대구의 한 학원도 소수정예로 유학반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는 교육에 보수적인가=대구시 교육청이 지난 4월 조사한 2004년도 '대구지역 조기유학생 현황'에 따르면 초등학생 157명, 중학생 175명, 고등학생 165명으로 나타났다.

대구는 서울 인천 등 경기권과 대전, 부산 다음으로 조기유학생이 많다. 교육청 관계자는 "일부 학생은 어느 나라로 유학갔는지조차 파악이 되지 않는다"고 했고, 유학원 관계자는 "중학교는 졸업했는데 배정받은 고교에 아예 가지 않는 경우도 있어 실제 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부모들의 직업은 교수, 의사, 연구원, 법무사, 회계사, 기업인 등 전문직이거나 고소득 자영업이 대부분으로 '학력 대물림' 현상도 뚜렷했다.

기획탐사팀=박병선 기자 lala@msnet.co.kr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사진 : 조기유학을 떠나는 아이들이 해마다 큰폭으로 늘고 있다. 공항에서 부모 손을 잡은채 큰 가방을 끌고 외국으로 떠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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