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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노인은 왜 장님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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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이 이야기는 아버지의 고등학교 때 은사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란다.

"그러니까 삼십 년도 더 전의 일일세. 당시 내가 자네들을 담임할 때 나는 하숙을 하고 있었네. 그 하숙집 안 채에는 하루 종일 밖으로 나오지 않으시는 노인이 한 분 계셨네. 나는 그 집에 2년 가까이 하숙을 했는데도 그 방에 노인이 계신다는 것을 전혀 몰랐어.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 집에 있는 동안 그 노인은 한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기 때문이지.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녁 노인은 잠시 문을 열어두고 계셨어. 비로소 나는 그 방에 노인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인은 장님이셨어. 그래서 내가 그 노인에게 연유를 물었지. 그러자 그 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겨우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매우 가슴이 찡 했어.

그래도 당시에는 그러려니 하고 흘려보내고 말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를 여간 괴롭히는 게 아니야.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풀어놓아야만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좀 풀릴 것만 같네."

"네에."

나는 침을 삼키며 계속 귀를 기울였단다.

그 할아버지가 청년 시절 때의 일이었다고 해. 그러니까 일제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쯤의 일이겠지. 당시 가뭄이 몹시 심해서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다고 해. 그래서 만주로 먼길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당장 먹을 것이 아쉬워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던 논뙈기를 죽 한 그릇과 바꾸는 일이 잦았을 정도였다고 해. 그래서 '콩죽논'이니 '팥죽논'이니 하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는 거야.

어느 날 저녁 이 청년은 간신히 멀건 죽 한 그릇으로 저녁을 떼우고 기름이 아까워 불도 켜지 않고 누워있는데 밖에서 '밥 좀 주소, 밥 좀 주소'하고 애절한 목소리가 들리더래. 그래도 못 들은 척하고 누워있는데 그 소리는 점점 가늘어지더라는 거야. 마땅히 줄 것도 없고 하여 청년은 귀를 틀어막고 엎드렸대.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는데 이튿날 아침 밖에 나가보았더니 글쎄 집 앞에 있는 나무 밑에 여남 살쯤 되어 보이는 바짝 마른 두 형제가 부둥켜안은 채 죽어있더라는 거야. 그것도 서로의 뺨과 팔뚝을 깨문 채 말이야.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서로의 팔을 깨물었을까?' 청년은 몸서리를 치며 그 형제를 뒷산에 묻어주었대. 그 이후부터 이 청년은 눈을 뜨기가 싫더라는 거야.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늘 눈을 감고 지냈는데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자 정말로 눈이 감겨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야.

"아!"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단다.

그러자 이야기를 하시는 선생님도 눈물을 훔치며 말씀하셨어.

"나는 그 때 이 이야기를 덤덤하게 흘려듣고 말았는데 요즘에 와서야 그 이야기가 웬지 내 이야기가 아닌가 여겨져. 자꾸만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애."

그러고 보니, 나 역시 그 노인의 청년 시절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구나. 얘야.

심후섭(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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