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組) 추첨에서 코리아가 프랑스, 스위스, 서아프리카의 토고가 있는 G조로 낙점되자 붉은 악마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운칠기삼(運七技三)-무엇보다 한국축구팀은 '죽음의 조'를 피했다. 히딩크와의 '기구한 운명'도 피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의 죽음의 조는 C조다. 아르헨티나와 우리 '아'감독의 조국 네덜란드, 코트디부아르,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간의 죽음의 피바람-.
토고는 지금 월드컵에 들떠 있다고 한다. 가발회사로 성공한 그곳 한인회장 이대형 씨의 전언이다. 그는 한-토 관계가 월드컵을 계기로 깊고 넓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그렇다. 우린 월드컵 덕분에 또 한 나라 토고를 알게 됐다. 인구 568만 명, 땅 면적 남한의 절반, 1인당 GDP 380달러,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동포 100여 명이 그들과 오순도순 살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죽음의 조'라는 말이 새삼 떠올라서 떠들어 본 것이지만 오늘의 주제는 월드컵이 아니다. 이 죽음의 조(組)-정치판의 죽음의 조, 선거판의 죽음의 조도 우리가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정치가 될까, 헛꿈을 꾸다가 잠시 빗나간 것이다. 이강철-유시민의 죽음의 조, 정동윤-정희수, 아니 정동윤-박근혜의 '죽음의 조'들은 꼭 그렇게 맞붙어야 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우리를 답답하게 한다.
과문(寡聞)의 탓이나 민주주의가, 정치가 성숙된 나라들에선 국회의원 선거 때 상대 정당의 강자 즉 당대표나 원내총무 또는 비중 있는 인물이 출마한 곳에 굳이 이쪽의 강자(强者)를 맞붙이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른바 상대에 대한 인정(認定), '페어 플레이 정치'다.
불행히도 한국의 정치는 이런 점에서 낙제점이다. 17대 총선과 작금 대구'경북의 재선거에서 우리는 '네거티브 정치'의 처절한 단면을 읽었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지역주의의 희생양을 자처하고 대구에 내려온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당시 민주당 대표의 '수성갑'에 이한구를 내세워 꺾어 버렸다. 영천 재선거엔 사실상 '박근혜'를 내세워 정동윤을 때려눕히고, 대구 동을(東乙)에선 기어이 유승민을 보내 이강철을 침몰시켜 버렸다.
'죽음의 조'가 빚어낸 암울한 작품이다. 명색이 당대표를, 시민사회수석이라는 간판까지 달고 '필사적으로' 출마한 '실세'를 악착같이 죽여 버릴 땐 그만한 이유야 있을 테지만 정치적 도리, 인간적인 예의는 그런 게 아님이 분명하다. 여'야의 입장이 뒤바뀌어도, 상대가 조순형'이강철이 아닌 다른 강자(强者)였어도 논리는 같다.
이런 관점에서 기자는 당시 "동을 후보를 내지 말자"고 했던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제안에 공감했다. 그리고 지난 10월인가, "불행하게도 우리 선거법에 부정한 후보와 경쟁했던 다른 후보에 대해 아무런 보상이 없다. 더구나 부정 선수를 내보낸 정당에 대해서도 법적 제재가 전혀 없다"며 현행 재'보궐 선거의 불합리성을 주장한 대경대 박상현 교수의 문제 제기에 박수로 공감한다.
비록 강 의원의 제안은 타이밍을 놓쳐 빈축을 샀지만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예를 들어 불법을 저질러 당선무효가 된 대구 동을과 영천의 경우, 유권자들이 선거구마다 10억 원 전후의 거액을 물어 가며 재투표를 하는 꼴이었으니 이런 비생산적 사태의 원인 제공자들과 소속 정당들은 응분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당선무효된 정당이 해당 지역 재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쪽으로 선거법을 만들든지 아니면 '정치적 불문율'이 되게 하든지, 올림픽에서처럼 2위가 1위를 승계하게 하든지 좌우지간 방법을 논의할 것을 제안하는 이유다. 적반하장 격으로 '죽음의 조'를 만들다니.
'토고'는 온통 축제 분위기라고 한다. 지난 11월 19일 교민회 주최의 '한국 문화의 날' 행사엔 그쪽 장관 4명이 함께할 정도로 유대가 깊다고 한다. 우리 붉은악마들이 토고전(戰) 승전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다감한 '먼 친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갖는 것은 그래서 승리 이상으로 중요하다. '죽음의 조' 탈출에 박수를.
姜健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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