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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서-오래 묵은 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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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막 지급 받은 새 교과서를 열 때 피어나오던 산뜻한(?) 인쇄잉크의 향내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울긋불긋한 삽화들이 그려진 종이의 질감. 그런 것들을 좋아해서 평생 편집일을 직업 삼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책에는 나름대로의 냄새가 있는 듯싶습니다. 새 책은 새 책대로 처녀림에 들어서는 설렘 같은 것이 있고, 묵은 책은 묵은 책만이 풍길 수 있는 구수한 잔향과 함께 그 책과 함께한 추억이 있습니다. 대중가요의 한 구절처럼 묵은 책에서는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는 사랑' 같은 것이 있습니다.

책은 읽히기 위해 존재합니다. 한 번 읽고 버리는 일회성 용품은 결코 아닌 게 책이 지닌 또 다른 매력입니다. 10대 때 읽었던 책을 삼십이 넘어서 다시 읽으면 그 맛이 확연히 다른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를 최근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감흥을 느끼게 된 것 같은 경우죠. 마치 올드 팝 음악을 다시 듣는 듯한, 흘러간 시절의 영화를 다시 볼 때의 그런 감흥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완전히 마스터했다"라는 표현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감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래된 책은 마치 묵은 친구와 같습니다. 오래 묵은 책은 요즘에 발간된 책들에 비해 조악해 보입니다. 종이는 누렇게 빛이 바랬고 활자도 작고 빽빽합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가로쓰기가 아닌 세로쓰기로 조판되어서 읽기마저 불편합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한국전후문학전집'이 그러한데 단기 4293년 판이니 44년 전 만들어진 책이지요. 그런데 그 오래된 친구에게서 긴 세월 숙성된 좋은 포도주 향 같은 것이 난다고 하면 너무 심한 과장이 될까요. 아무튼 지금껏 내 곁을 떠나지 않은 이 책은 더없이 든든하고 좋은 내 친구가 분명합니다.

박상훈(소설가·맑은책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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