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우정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 현상공모를 냈다. "영국 끝에서 런던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인가?"가 문제였다. 비행기를 탄다, 기차를 탄다, 자동차를 이용한다 등 갖가지 방법을 제시한 답들이 쏟아졌다. 그 중 일등을 차지한 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

멀고 험한 길도 좋은 사람, 같이 있기만 해도 즐거운 친구와 함께 갈 수 있다면 더 이상 그 길이 멀게만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감으로 가슴이 뿌듯해져서 룰루 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걸어가게 된다.

조선시대 실학자이며 걸작 '열하일기(熱河日記)'와 '양반전' 등의 저자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친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연암의 아들은 "아버진 식사때도 늘 서너 사람의 친구들과 함께 밥상을 대하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연암의 친구들은 주로 재야지식인'서얼 등 주류 바깥의 사람들이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좋은 벗 사귀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과학과 철학을 두루 아울렸던 실학자 홍대용, 박제가, 뛰어난 재야과학자 정철조, 독서광 이덕무 등 저마다 한가락씩 비범한 재주를 지녔던 친구들이었다.

한창때 이들은 매일 밤 모여 풍류를 즐기면서도 등잔불 아래 이마를 맞대고 과학과 문학과 세상의 이치를 논하였다. 친구에 살고 친구에 죽는다 할 만큼 의기투합하여 돈독한 우정이 평생을 갔다. 연암의 청(淸)나라 열하 여행 때도 지기들이 함께 하였다. 그의 '취답운종교기(醉踏雲從橋記)'는 그런 벗들과의 교유를 생생하게 담은 책이다. 삶에서 무엇보다 우정을 중시했던 연암은 특유의 우정론을 갈파했다. "벗은 제2의 나다. 아내는 잃어도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친구는 한 번 잃으면 결코 다시 구할 수 없다"라고.

소용돌이치는 '황우석 파문'을 바라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마주보고 웃던 친구 사이가 오늘은 싸늘하게 등 돌린 모습을 보게 된다. 우정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믿고 싶진 않지만 현실은 그런 것 같다. 친구가 명예도, 부(富)도 순탄하게 잘 나갈 땐 "하하호호" 하다가도 어느날 바닥을 모를 만큼 추락할 땐 근처에 얼씬도 하려들지 않는 게 우리다. 조건 따라, 상황 따라 사람 간의 정(情)마저 고무줄처럼 변덕부리는 세태에서 변함없는 우정이 평생 이어졌던 연암과 그의 벗들이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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