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

하몬 스미스 지음, 서보명 옮김/이레 펴냄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재력가에다 사회에서 명망을 얻고 있는 저술가이지만 한 사람은 가난한 대학생일 뿐이다. 우연히 싹트게 된 이 두 사람의 우정은 25년이란 세월 동안 지속됐고 두 사람은 미국 사상의 황금기를 수놓았던 사상가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미국 정신의 르네상스를 이끈 우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는 소로우와 에머슨의 특별한 우정을 다루고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낯선 이름인 랠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은 1880년대 칼뱅주의가 만연해 있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정신의 가치를 높이 세운 급진적 사상인 '초월주의'의 실질적인 수장이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1817~1862)는 최초의 녹색 서적으로 일컬어지는 '윌든'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권력의 의미를 성찰한 '시민의 불복종' 등의 저서로 널리 알려진 사상가.

부유했던 에머슨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재능있는 신진 문인을 위한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후원자였다. 처음에 소로우는 에머슨의 눈에 띈 '가난하고 재능있는 젊은이'일 뿐이었다.

1840년대, 에머슨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소로우를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 살게 하고 가족의 한 사람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뿐만 아니라 소로우가 작품을 쓸 수 있도록 돈을 빌려주고 윌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을 수 있도록 땅도 내주었다. 19세기에 씌어진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로 평가받는 명작 '윌든'은 에머슨의 보살핌 속에서 나올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특히 우정을 신봉했다. 소로우는 가장 친했던 형이 죽고 나자 '나의 친구가 나의 진정한 형제'라고 고백했고 에머슨 역시 '우정의 목적은 삶과 죽음의 모든 길과 모든 인간관계에 도움과 위안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책은 '두 영웅들의 우정담'에 그치지 않는다. 25년이란 세월 동안 그들의 우정은 다양한 빛깔로 변주됐다. 그들은 나이 차이가 14년이나 나지만 경쟁과 협력, 사랑과 질투의 시선이 묘하게 교차한다. 소로우는 에머슨이 새롭게 발굴한 신진 문인들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고 에머슨은 문학적으로 훌쩍 성장해버린 소로우를 통해 경쟁심을 느끼기도 했다. 사상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사상적 바탕을 엿볼 수 있다.

우정이라는 가치를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서로의 가능성을 보듬어주고 북돋워준 소로우와 에머슨의 우정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제자와 스승의 관계에서 차츰 서로의 글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거듭하는 경쟁관계로 발전하면서도 벗으로서 우정을 저버리지 않는 두 사람을 보면 친구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에머슨에게서 나와 남의 관계를 대립과 경쟁으로 이해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나와 남이 친구가 될 수 있고 우정을 이룸으로써 최고의 선을 추구할 수 있다는 발상을 찾을 수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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