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다시 국무총리가 '국민통합'을 내세웠다. 오래 외쳐온 '통합(統合)'이 여태 안 풀린 자백으로 들렸다. 대체 그게 뭐기에 통치차원의 골치를 썩이는가.
이희승 국어사전은 통합을 '모두 합쳐서 하나로 모음'과 '다양한 입장을 국가 등 일원적인 단체의 의사에 응집함'이라 풀이한다. 현 정권의 통합은 결코 전자가 아니다. 전체주의로 빠질 위험이 크다.
그러나 후자의 통합은 원할 것이다. 무릇 정권은 국민의 다양한 입장을 응집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제대로 통치할 수 있다. 현 정권은 통치기반인 그 통합에 실패해왔다. 지지한 유권자로서 안타깝다.
사립학교법은 통합의 대상이 아니다. 의견이 갈라져도 좋다. 기존 법률로 처벌을 확실하게 하자는 주장도 일리가 있고, 개방형 이사제도를 도입하여 나쁜 유혹을 예방하자는 취지도 일리가 있다. 이런 문제는 찬반 의견개진의 충분한 과정을 거쳐 본때 나게 정리할 만한 것이었다.
실패를 거듭한 통합, 그 등뼈에는 '과거사'가 있다. 과거사에 대한 현 정권의 인식태도가 어느 수준까지는 겸손해져야 통합이 이룩될 수 있다. 이건 남북관계의 기조, 외교, 경제, 교육에도 전제조건이다. 그게 안 되니 사사건건 싸움으로 흐른다. 그게 되면 싸움 거는 쪽은 크게 명분을 잃기 마련이다.
'통합과 과거사'의 관계에 직결된 인물은 박정희다. 이승만은 끝났다. 전두환, 노태우도 이미 관에 넣었다. 김영삼, 김대중은 현 정권의 '과거사'가 아니다. 언젠가는 양김(兩金)이 현대사에 끼친 공과(功過)를 객관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역사의 대차대조표에 남겨둘 일거리다.
방금 '객관적 공과'라 했지만 '집권 18년의 박정희' 평가에도 바로 그런 잣대가 요구된다. 물론 그 세월 동안에 국가가 저지른 야만행위에 억울하게 목숨 잃고 고문당하고 감옥살이했던 당사자와 가족은 총체적 책임자라 할 통치자와의 화해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에 저항한 공적을 토대로 정권을 잡은 그때 '민주화 세력'은 냉철히 근대화 과정을 성찰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화운동 했다'라는 절대적 도덕군자의 오만을 치유할 거의 유일한 코드다.
그들이 존중하는 민중의 대다수는 오늘도 역대의 가장 훌륭한 대통령에 박정희를 꼽는다. 누구나 다 아는 경제공적 덕분이다. 민중이 무지하거나 누구의 주장대로 '국민은 아직 20세기 독재시대에 살고' 있는 탓이 아니다.
1960년대에 대학생 둔 가정은 예외였겠지만, 압도적 다수의 민중은 절대빈곤에 허덕였다. '먹을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했다. 한국전쟁의 후유증과 대규모 무장공비 침투는 궁핍한 남녘에 '반공의 주술'이 쉽게 번져나갈 최적의 환경이었다. 간신히 한글이나 깨친 어버이들에겐 '잘 살아 보세'가 무지개였다. 자식 안 굶기고 좀 입히고 공부시킬 만한 돈벌이를 필생의 꿈으로 간직했다.
그런 민중이 박정희의 3선개헌에 찬표를 던졌다. 유신도 반대하지 못했다. 오늘날 삶의 조건에 들이대며 어버이들을 '멍청한 무식쟁이'로 몰아세울 것인가.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는 '극좌골탕'이며 '극우골통'과의 '적과의 동침'으로써 존재근거를 고수하고 확장하려는 역사의 지진아다.
이제 박정희의 공과에 대한 객관적 정리는 통합의 출발선이다. 문화혁명이 폐막한 무대에 주연으로 등장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공과를 '7대 3'으로 정리했다. 그건 중국식 통합의 출발선이었다.
현재 한국의 오만한 '과거 투사'들이 그걸 몰라 겸손해지지 못하는 것은 아닐 듯하다. 진짜 이유는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 박근혜와의 경쟁에 집착한 탓인지 모른다. 만약 그러하다면, 옹졸한 짓이다. 대국의 '큰 통'을 입으로는 부러워하면서도 영혼은 소국의 못난 버르장머리에 매달린 삼류에 불과하다.
21세기 한국정권은 20세기에 비해 너무 행복한 기반이다. 민주주의와 경제를 이만큼 성장시킨 덕분이다. 왼발은 민주주의를, 오른발은 경제를 디뎠다고 해도 좋다. 그것도 민주화와 산업화의 극단적 대결 한복판으로 전진해 왔다. 어느 한쪽만 선(善)이라면 통합은 장식품이다.
이대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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