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가집 설맞이…의성 김씨 종부 류정숙씨

조선 개국공신인 의성 김씨 문절공 김용초 선생의 20대 종부인 류정숙(59'柳貞淑)씨.

류씨는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윤동(倫洞)마을, 뒤편엔 학산이 병풍처럼 펼쳐졌고 앞엔 대가천이 유유히 흐르는 이 곳에서 400여년 된 종가고택을 지키고 있다. 이 곳을 찾아 열흘 앞으로 다가온 민족 대명절인 설(29일)을 맞아 점차 흐릿해지는 설의 의미와 종가 설맞이 준비를 알아보았다.

때마침 종가는 대대적인 개축이 이뤄지고 있던 터라 그곳에서 약 1km 떨어진 예은(禮隱) 다례원(류씨가 후학들에게 다도(茶道)를 전수하는 곳)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종가의 설맞이요? 한 가문에서 종부의 가장 큰 일은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 아니겠어요?"

종손이 사랑채에서 공맹을 읽고 의와 예를 논할 때 안채에선 조상의 기일을 챙겨 정성껏 제사를 지내고, 찾아온 친척과 길손에게 소홀함이 없이 대접하는 일은 종부의 가장 중요한 덕목.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그 정신만은 변함이 없죠."

예전에 비해 준비하는 음식이나 찾아오는 지손(支孫)들이 많이 줄긴 했어도 설이 다가오면 차례상을 마련하는 일 만큼은 종부가 직접 챙겨야 할 몫이다. 이 때문에 섣달이 들면 이미 종가의 설맞이는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 준비는 정갈한 마음자세부터 가다듬고 있어야 흐트러짐 없이 차례준비를 할 수 있어요."

감주와 수정과, 엿과 유과 등은 대개 설 보름 전에 준비를 한다. 시어머니가 계실 땐 두부도 직접 만들었다. 또 이때부터 차례음식의 시장 조사도 시작된다. 대목에 값이 오르는 건어물은 미리 구입하고 과일도 가장 좋은 것만 골라 장만할 뿐 아니라 육류와 전류에 쓰일 각종 채소와 부식을 설 사흘 전까지는 모두 갖춰 놓는다.

"차례음식은 시장에서 최고로 좋은 것들만 삽니다. 과일도 낙과는 피해 흠이 없는 최상품으로 고르죠."

그래야 '자손들이 잘 된다'는 종가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설 사흘 전엔 제기를 꺼내 닦는다. 모두 50여 종의 놋그릇이다. 전과 적을 올리는 제기는 한 손에 들기에도 묵직하다. 이를 윤이 나도록 닦아 정돈해 두어야 설날 차례 순서에 어긋남이 없다.

설 이틀 전엔 혹시 빠트렸을지도 모르는 음식의 최종 장을 보고 설 전날 차례음식을 장만한다. 그리고 저녁엔 집안 곳곳에 촛불을 켜고 재실에 가서 묵은 세배를 하고 김용초 선생의 사당인 원모제(遠慕齋)를 찾아 참배한다.

"21살 때 처음 시집 와서 마당에 솥뚜껑을 걸고 부침개를 부칠 때 불 때는 일이 제일 힘들었어요."

그럴 땐 늘 시어머니의 자상한 말씀이 위로가 됐다.

"지금은 장만하는 음식도 1/3로 줄고 방문하는 친지도 절반 정도로 줄었지만 시어머님이 계실 땐 설에 찾는 지손만 해도 100여 명이 넘었습니다."

제사 때 쓰는 떡만 해도 시루떡, 부편, 경단 등 7가지에 파제날(제사 지낸 이튿날) 온 동민에게 나눠먹을 만큼 음식을 해야 했다.

물론 설 한 번 치루고 나면 온 몸이 물먹은 솜방망이 같았지만 그래도 힘들고 귀찮다는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하회 류씨 가문의 종가에서 자라면서 보고 들은 종가의 전통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제사나 차례는 조상에 대한 효의 연장으로 한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마땅히 할 일"이라는 류씨는 "6년 전 본 맏며느리가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가 알아서 차례를 차릴 땐 대견하다"라고 했다.

추석과 설 차례상을 빼고도 4대봉제사, 양조모, 불천위까지 1년에 제사만 10번. 음력 10월엔 내리 나흘을 제사지낸 후 사흘 뒤 또 제사를 지내기를 40년이다.

그래도 류씨는 "종부란 자리가 늘 좋았지요. 지손들도 한결같이 종부를 집안의 큰 어른으로 존경했었고 그 권위도 세워주었다"라고 했다.

현재 류씨는 맏며느리에게 종부의 짐을 조금 덜면서 16년 전 시작한 다도를 전파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06년 1월 19일자 라이프매일)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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