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리랑카인 대구 보은 설밑 '이웃사랑' 활짝

산둔 쿠마르·수다르시 남매

24일 오전 대구 달서구 한 청소년 쉼터. 가정에서의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가출, 이 시설에서 생활하는 28명의 청소년에게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스리랑카인 산둔 쿠마르(28)와 수다르시(30·여) 씨 남매. 눈앞에 나타난 검은 피부의 두 이방인을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멀찍이 지켜보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피자, 콜라, 통닭 등의 음식이 펼쳐지자 금세 표정이 달라졌다.

"4년 전 대구에 산업연수생 근로자로 왔습니다. 타향살이하면서 고향에 있는 부모님은 물론 특히 어린 두 동생들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소문 끝에 동생뻘 되는 아이들이 많은 이곳을 찾았지요. 앞으로 이 아이들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힘 닿는 데까지 도울 생각입니다."

산둔 씨는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준 한국을 위한 보은(報恩)의 방법으로 이 아이들을 선택했다. 가족의 사랑을 일찍 포기한 아이들에게 따뜻한 가정을 선물하기로 한 것.

"우리나라에서도 가난은 대물림됩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지요. 그것이 싫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요."

힘든 가정형편 때문에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그의 처지. 비슷한 형편에 처해 있는 한국의 아이들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가 됐다.

그리고 4년 만에 결실을 이룬 '코리안 드림'이 그의 결심에 불을 댕겼다.

"3년여 동안 대구에서 악착같이 모은 9천 달러를 자본금으로 사무실을 열었어요. 빠리푸(콩), 가리파우더(찌개용 양념) 등의 스리랑카 농산물을 한국으로 수입하고, 한국의 자동차 부품과 가전제품을 스리랑카에 수출하는 중개무역을 하고 있지요. 그래서 꿈을 펼칠 수 있게 기회를 준 한국민을 위해 뭔가 해야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에게도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러하듯 타향살이가 쉽지만은 않았다. 지난 2002년 1월 이 땅에서 처음 얻은 직장인 대구 북구 검단동 한 자동차부품 생산공장에서 하루 13시간이라는 중노동을 견뎠다. 처음 만져보는 기계와 서툰 한국말 때문에 갖은 설움을 겪었다.

'포기'라는 단어가 수없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훌륭한 사업가가 되기 전에는 절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자신과 한 약속이 그를 지탱시켰다.

노력한 자에게 행운은 온다고 했던가. 지난해 중순 산둔 씨에게 기회가 왔다. 한류 열풍이 분 스리랑카에서 한국산 자동차와 가전제품들이 일본 제품을 누르고 인기가 폭발한 때문.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이를 바로 활용했다. 본격 무역업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벌써 9천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기회의 땅'이었던 한국이 이제 '성공의 땅'으로 변한 셈이다.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해준 한국을 평생 잊을 수 없다는 산둔 씨는 "이 청소년 쉼터에 매달 50만 원씩의 후원금을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사진: 24일 한 청소년 쉼터를 찾아 사랑을 전달한 스리랑카인 산둔, 수다르시 씨 남매. 이들은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로 약속했다.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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