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반, 차츰 일반 속으로…

지난달 24일 밤 10시 대구 수성구의 한 트렌스젠더바. 손님들을 기다리는 트렌스젠더 여종업원들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보통 밤 11시쯤이면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트렌스젠더 종업원 김모(29)씨는 "과거에는 일부 남성들만 이곳을 찾았는데 요즘은 40, 50대 아줌마들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에서 찾아오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연예인 하리수를 비롯해 트렌스젠더 연예인이 대중매체에 심심찮게 등장한 게 한 몫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1천500만 원 정도만 주면 성 전환 수술을 할 수 있는데 의향이 있냐"며 제안해 기자를 당황케 했다.

다른 트렌스젠더 이모(32)씨는 "손님들 반응도 예전과 달라졌다"라며 "예전엔 찾아오는 손님들 상당수가 우리에게 좀 거리낌이 있었는 것 같지만 요즘은 별 이질감 없이 농담도 하고 화기애애하게 대한다"라고 거들었다. 이들은 예전과 비교해 사회적인 인식이 차츰 달라지고 있는 걸 실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 소수자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최근 영화 '왕의 남자'를 비롯해 성 소수자가 전반적인 문화에서 하나의 코드로 자리 잡고 음지에만 머물던 성 소수자가 양지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들에 대한 이질감은 많이 옅어졌다. 보수 성향이 팽배한 대구'경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반 대학생 김모(21'여)씨는 "예전과 달리 대학교에서 이반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주위에서 '이반'(성 소수자를 지칭하는 은어)을 친구로 두고 있는 일반 학생들이 꽤나 있다고 했다. 일반 대학생 최모(20'여)씨는 "전부터 짐작이 들던 이반 친구가 6개월 전에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최씨는 여중과 여고에서 생활해 동성애적 성향에 익숙한 터라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고 한다. 최씨는 "커밍아웃 뒤에 오히려 그 친구와 더 친해졌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일부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차갑다. 특히 청소년 교육 현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중학교 3학년인 박모(16'여)양은 동성(同性) 친구에게 자꾸 끌리는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면서 생활한다. 중학교 1학년 때 용기를 내 친구한테 이반이라고 이야기했다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박양은 이후 괴로움을 참지 못해 자살을 수차례 시도했다. 박양은 "평생 그런 이야기를 절대 안하기로 마음먹었다"라고 울먹였다. 고등학교 1학년인 정모(17'여)양은 요즘 불안해 견딜 수 없다. 한 때 이양은 자신을 이반으로 생각해 비슷한 성향을 가진 모임에 끼여 어울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이반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쉽게 인연을 끊지 못해 무척 힘들어 하고 있다. 이양은 "학교 내에서 이반이라 낙인찍히면 학교생활이 끝장나는데 모임에 발을 끊기도 쉽지 않다"라고 고민했다.

청소년상담실의 한 상담자는 "최근 학생들이 자신을 이반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학교에선 이를 여전히 금기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교사들 또한 동성애에 대해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저 쉬쉬하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라고 덧붙였다.

직장인 신모(27'여)씨는 "성 소수자에 대한 심정은 어느 정도 이해가지만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반인 이모(25'여)씨는 "온라인상에서 이반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적잖게 만난다"라고 했다. (2006년 3월 2일자 라이프매일)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박순국 편집위원 toky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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