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각사(麟角寺)는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에 있는 절이다. 화산(華山) 동네 어구 석벽이 깎아지른 듯하다. 옛날에 기린이 뿔을 걸었다는 말이 전하고 있어 절 이름으로 삼았다. 꽃과 버들 제대로 풍광을 이루고, 세속 티끌에서 벗어나 있어 깨끗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는 말을 옮기면 이와 같다.
지금은 석벽 앞에 도로가 나 있어 차에서 내리면 바로 절이다. 툭 트인 논밭 사이에 그리 크지 않은 전각이 자리 잡고 있어 조금 어색하게 보인다. 어느 모로 보아도 명승지는 아니지만, 보각국사비(普覺國師碑)라고 약칭되는 비석이 있어 찾지 않을 수 없다. 보조국사는 일연(一然)이다. 만년에 인각사 주지로 있으면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완성했다. 본문에 "인각사 주지 일연"이 지었다고 하는 말이 있어 증거가 확실하다.
비문은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었다. 중국 명필 왕희지의 글씨를 모아 새겨 만들어 글씨 때문에 탁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수난을 겪고,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망쳤다고도 한다. 파괴된 조각이 마루 밑에 들어 있는 것을 찾아내 세우고 비각을 만들었다. 다행히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탁본이 있어 해독이 가능하다. 중국에 전해진 탁본이 발견되어 뒷면의 음기(陰記)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비 복원 작업이 진행되어 2006년 8월 1일에 제막식이 있을 예정이다. 올해가 일연 탄생 800년 되는 해여서 국제학술회의를 비롯한 다른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비는 제명을 다 들면 "고려국화산조계종인각사가지산하보각국존비명병서"(高麗國華山曹溪宗麟覺寺迦智山下普覺國尊碑銘幷序)라고 했다. 나라 이름 '고려국' 다음에 '화산'을 들었다. 절 뒤 멀리 있는 화산으로 당시에는 마을 이름을 삼은 것 같다. 상위의 행정구역을 적지 않은 것은 일연이 있었던 절이면 천하가 다 알아야 여긴 때문이 아닌가 한다. '조계종'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불교 종단이다. '가지산하'는 전라도 장흥 가지산 보림사(寶林寺)에서 생긴 교파이다. '보각'은 사후에 나라에서 내린 시호이다. '국존'은 국사(國師)와 같은 뜻이며, 최고 위치의 승려이다. '비명병서'라는 말은 산문 서를 앞에 갖추고 율문 명을 본문으로 한 비문이라는 말이다.
이름 난 문인 민지(閔漬)가 글을 썼다. 서두에서 맑은 거울과 탁한 금속은 두 가지 물건이 아니고, 부처와 중생은 본성이 같다고 하는 이치의 근본을 말했다. 본론에서 일연 스님의 생애에 관해 알리고, 끝으로 사람됨을 총평하고 저술을 들었다. 명에서는 평가하고 칭송하는 말을 했다. 필요한 내용을 다 갖추었다.
그런데 저술을 열거하면서 '삼국유사'는 들지 않아 무슨 까닭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쓴 해가 1295년이니 '삼국유사'가 간행되지 않고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완성되지 않았고 제자들이 보완해야 할 작업이 남아 있어 자료로 제공하지 않았으리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본문에 '무극(無極) 기(記)'라고 한 곳이 둘 있어, 무극이라는 제자가 가필한 내력을 알려준다.
생애에 관한 서술은 '삼국유사' 이해에 도움이 된다. 스님은 장산군(章山郡)이라고 하던 지금의 경산시에서 태어났다. 9세 때 광주 무량사(無量寺)에서 출가하고, 전국 여러 사찰로 거처를 옮겨 다녔으며, 고향 가까운 곳에 자주 들려 비슬산 보당암(寶幢庵), 용천사(湧泉寺), 포항 오어사(吾魚寺), 달성 인흥사(仁興寺), 청도 운문사(雲門寺) 등에 머물렀다. 78세에 인각사에 와서 주지로 있다가 84세에 세상을 떠났다.
경주와 가까운 곳이 고향이라 신라의 유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질 만했다. 여러 사찰을 찾아다니고 머문 경력이 자료 수집을 광범위한 지역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오어사나 운문사와 관련된 기록이 현지조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의식 각성의 과정을 말해주는 내용은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34세 때 몽고군이 침공해 난리를 피하게 해달라고 기원하다가 '생계불멸 불계부증(生界不滅 佛界不增·생계는 없어지지 않고, 불계가 늘어나지도 않는다)'로 깨달음을 삼았다고 했다. '생계'는 현실의 세계이고, '불계'는 초월의 세계이다. 처참한 재난이 닥쳐도 생계는 없어지지 않고, 불계가 늘어나는 것도 아닌 줄 심각하게 겪어보고 알았다. 불계의 이치보다 생계의 역사를 더욱 소중한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초월로 치닫지 않고 현실에서 희망을 얻고자 했다. 그 때의 각오를 시발점으로 삼아, 5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노력해 삼국유사를 이룩했다.
사람됨을 총평하는 대목에서 말했다. '어무희학 성무연식이진정우물'(語無戱謔 性無緣飾 以眞情遇物·말할 때 우스개가 없고, 꾸며대지 않는 성품이며, 참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했다.) /처중약독 거존약비(處衆若獨 居尊若卑·여럿이 함께 있어도 홀로인 것 같았으며, 높은 위치에서 도 낮게 처신했다.) /어학불유어사 자연통효 (於學不由於師 自然通曉·스승에게서 배워 공부하지 않고, 저절로 환하게 알았다.)
명에서 한 말도 들어보자. '학궁내외 기응만차(學窮內外 機應万差·안팎을 모두 공부하고, 만 가지 다른 경우에 호응했다.)/ 효료제가 수현색묘(曉了諸家 搜玄索妙·제가의 학설을 모두 꿰뚫고, 아득하고 기묘한 것을 찾아냈다.) /부석중의 여경사조(剖釋重疑 如鏡斯照·많은 의문 파헤치고 풀이해 거울로 비추는 듯했다.)
삼국유사를 지은 이유와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순서를 바꾸어서 재구성하면서 말을 보태자.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야 한다는 각오와 그 방법이 스승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알아서 한 일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과업을 홀로 감당했다. 역사 서술은 국가사업으로 하며 유학하는 문인이 담당한다는 통념을 깨고 승려가 맡아 나서서 역사서가 고승전이고 설화집이기도 하게 만드는 새로운 작업을 했다.
불교 공부에 그치지 않고 세속에 대한 이해를 함께 갖추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광범위한 문제를 다루었다. 각 항목 말미의 찬(讚)을 보면 뛰어난 시인이다. 기존의 저작을 널리 참고하고, 그런 데서 빠뜨려 알 수 없게 된 기묘한 사연을 힘써 찾아냈다. 서로 다른 자료를 함께 수록해 비교해 검토했다. 세상사나 인생살이에 관한 갖가지 의문을 풀어주는 통찰력을 보였다.
역사는 위대한 행적만이 아니다. 사소한 대상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다루었다. 공식 기록에 오르지 못한 향전(鄕傳)을 적극 찾아 수록했다. 구전되고 있는 자료를 받아들인 것이 적지 않다. 높은 위치에서 낮게 처신하는 것을 훌륭하게 여겨 그런 행적을 보인 승려들의 내력을 열심히 찾아 수록했다.
'진신공양'(眞身供養)이라는 대목을 보자. 어떤 내용을 다루고 무엇을 말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본보기이다. 효소왕 때의 일을 기록했으므로 '삼국사기'의 기사를 먼저 들어 비교하는 자료로 삼자. '삼국사기'에서는 효소왕이 당나라의 책봉을 받은 사실만 기록했다. 궁중에서 신하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고 했다. '삼국유사'는 빠진 기록을 보충하면서 그 이상의 일을 했다.
'진신공양'을 읽어보자. 신라 효소왕이 692년에 망덕사(望德寺)를 창건해 당나라를 위해 복을 빌고자 했다. 경덕왕 때인 755년에 망덕사 탑이 흔들리더니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났다. 절을 다 지어 낙성연을 열 때 누추한 승려가 나타나 동참을 허락해달라고 했다. 효소왕은 비웃는 말로 거처를 묻고 "국왕이 친히 공양하는 재에 갔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누추한 승려는 '진신(眞身) 석가(釋迦)를 공양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면서 몸을 솟구쳐 공중에 떠서 갔다. 왕이 사람을 시켜 찾게 하니 지팡이와 바리때만 발견되었다. 그 승려가 거처한다는 곳, 그리고 지팡이와 바리때가 발견된 곳에 각기 절을 세웠다.
이어서 '지론'(智論)이라는 경전에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계빈(카슈미르)에서 있었던 일이다. 고매한 승려가 큰 모임이 열리는 절에 들어가려고 하니 의복이 남루하다고 거절당했다. 좋은 옷으로 바꾸어 입고 참석을 허락받고는, 옷 덕분에 받은 음식이니 옷에 먼저 드려야 한다고 했다. 유사한 사례를 들었는데 상당한 차이가 있다.
서두에서 당나라에 의존하려고 한 것은 어리석다, 당나라가 흔들리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고 말했다. 국왕이 멸시하는 누추한 승려가 진신 석가여래라고 하는 충격적인 역설로 이중의 무지를 깨우쳤다. 승려는 국왕에게 부하가 아니고 스승이다. 누추하고 미천한 백성이 가장 훌륭하다. 불교 경전에서 비슷한 것을 찾아내, 기록한 이야기가 독자적인 창조물임을 알게 했다. 중국 당나라, 인도 카슈미르까지 연관시켜 이해하는 넓은 시야를 갖추고, 신라가 어째서 자랑스러운지 밝혀냈다.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