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에서 사건을 꽤 수임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이모 변호사. 2년전 1심에서 졌다가 2심에서 승소해 대법원에 상고가 된 사건을 계속 맡고 있었다. 의뢰인 김모 씨는 이 변호사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시일이 좀 흘렀을까. 승소를 위해 노심초사 하던 김 씨는 서울 모 법무법인 관계자의 말을 듣고는 갑자기 사건을 그 법인에 맡겨 버렸다.
항소심에서 워낙 변론을 잘 했다고 생각했고 대법원에서도 그게 주효할 것이라고 믿었던 이 변호사는 황당했지만 물러났다. 얼마 뒤 김 씨가 승소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대법 판결도 자신의 의견과 별 다르지 않음에 만족해하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법무법인 관계자로부터 수임료가 3천만 원이었다는 말을 듣고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자신은 500만 원이었기 때문.
문중 땅 송사 때문에 2002년 상고를 했다가 지난 해 확정판결을 받은 이모 씨. 그는 재판은 할 것이 못되지만 하더라도 다시는 상고하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있다. 3년이나 걸린 상소기간 동안 어디서도 속 시원한 답변 한 번 듣지 못했다고 한다. 대법원은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 서울에서 선임한 변호사는 연결도 잘 되지 않았다. 몇 번씩이나 찾아 올라가 만나도 진척 사정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수임료도 1, 2심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대구를 비롯한 전국 5개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설치키로 한 것은 상고심을 받기 원하는 국민들에게 신속하고 질 높은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대법원 상고사건 처리는 당해 연도에 결과를 보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선거사범 등 몇몇 사건을 제외하면 빨라야 2년, 늦으면 3년을 넘기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당사자들을 지치게 만들고, 이는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대법원은 대법관이 증원 등 조직을 확대·개편하면 불편이 감소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 고법 상고부를 설치키로 했다.
대구고법에 상고부가 설치되면 일단 사건 처리 기간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변호사들은 2년을 넘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상당 부분은 1년 이내 처리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당사자들의 법원 접근성도 크게 향상된다. 상고심은 당사자들을 불러 하는 사실심이 아니라 서류로 하급심의 법률 적용 적절 여부를 가리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건 당사자들이 재판에 출석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소송을 제기해 놓고 나면 변호사든, 법원이든 자주 가봐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지역에 있으면 심리적으로 편리할 수 있다.
소송비용이 크게 줄어드는 것도 긍정적 요인이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서울의 변호사들이 취급하는 상고사건 수임료는 지방보다 3~8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들도 사건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지역에서는 서울의 경우, 소송대리인들이 사건 파악에 덜 적극적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었다.
지금까지는 상고가 상당히 제한됐으나 상고 제한이 완화돼 상고심 재판을 받을 기회가 그만큼 늘어나는 장점도 있다.
반대로 고법 상고부가 설치되면 상고심의 권위가 다소 떨어지는 점이 있을 수 있고 이로 인해 특별상고 등 현재는 거치지 않아야 할 절차 등을 다시 수행하느라 또 다른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당할 소지도 없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법원이나 국회 지적대로 지역 인사와의 유착 가능성, 즉 전관예우 문제 등이 불거질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일부 비판에 대한 지엽적인 문제점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법원을 확대하지 않고 서울 고법에만 상고부를 설치하는 것은 지방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지방 고법을 서울 고법의 하급기관화 한다는 측면에서 지역법관이나 변협,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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