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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잊을수가 없어…" 상인동 폭발사고 1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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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 28일 오전 7시 52분. 대구 달서구 상인네거리 지하철1호선 공사장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일어나 101명이 목숨을 잃고 202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그 후 11년. 아직도 그날 그때의 아픔은 가시지 않고 있다.

세살배기 아들을 둔 중학교 여교사 A씨. 출근길에 폭발사고를 당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모든 것을 잃었다. 전신마비. 생각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차라리 뇌를 다쳐 사고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다면…. 아직까지도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A씨는 이제 다시는 교단에 설 수 없다. 동료 교사들은 "고교 교사였던 친정아버지는 딸 뒷바라지를 위해 학교까지 그만뒀다."며 안타까워 한다.

폭발사고로 중학생 아들을 잃은 B씨는 6년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B씨는 미칠 것 같은 분노를 술로 풀었다. 알코올중독.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다 경찰서 유치장에 드나들기를 수차례. 드디어는 외딴 철길에서 달려오는 열차에 뛰어들었다.

상인동 가스폭발 참사 희생자 유족회 정덕규 회장은 "최근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며 "부인과 남은 아들을 돌보려 했지만 두 모자는 모든 연락을 끊고 사라져버렸다."고 전했다.

28일 오전 10시 대구 달서구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희생자 위령탑(96년 11월 완공)에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열번째 향이 피어 올랐다. 이날 추모행사에 참석한 유족들은 40~50명선. 나머지 유족들은 대구를 떠났거나 세상과의 인연을 끊다시피했다.

"누가 유족들의 고통을 알겠습니까. 사고 후 3개 월동안 밥 한 숟가락 들지 못했습니다. 물만 마시다 하루 4갑씩 담배를 피워댔더니 새까맣게 변한 얼굴이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습니다. 폭발사고 희생자의 절반은 주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그리워하다 몽유병을 앓거나 원인 모를 병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정덕규 회장은 "유족들은 살아 있는 한 추모제를 중단하지 않을 작정"이라며 "추모제엔 두 번 다시 이런 어처구니 없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유족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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