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으로 추방당하지 않기 위한 이주자들의 마지막 카드는 '위장결혼'이다. 영화는 정감 있는 이집트식 유머를 곁들이며 잉글랜드 드림을 쫓는 이방인들을 그린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이집트에서 영국으로 날아온 알리. 웨이터, 모델, 댄스교사 등 닥치는 대로 현실을 헤쳐가지만 그의 청운의 꿈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가 주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나리오는 그로 하여금 변태 취급을 받고, 번번이 하숙집에서 쫓겨나게 만든다. 이동식 타자기와 금붕어 어항을 들고 길거리로 나앉지만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간신히 버텨가는 생활,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비자 연장마저 거부당해 3개월 내에 쫓겨날 위기에까지 몰린다.
이때 친구 아메드는 '위장 결혼'이라는 솔깃한 제안을 한다. 마릴린 먼로를 쏙 빼닮은 쇼걸 린다. 위장 결혼의 대상자로 만나지만 그는 첫눈에 반해 진짜 결혼까지 해버릴 욕심을 내보인다. 그러나 그마저도 쉽지는 않다. 린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구애를 펼치는 알리를 피하기만 한다.
그런 그에게 시민권과 경제적 안정을 단숨에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는 소외의 벽으로 둘러친 그곳에서 처음으로 안락함과 따스함을 맛보게 된다. 급작스런 처지 변화가 '생뚱' 맞지만 그 내면을 뜯어보면 눈물겹다.
영화는 야심만만하지만 존재가치마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외국인의 비애를 다루지만 무거움은 없다. 이집트인 알리가 만나는 영국사회와 그들의 정서를 체감하는 방식이 오히려 경쾌하게 그려진다.
추방될 위기에 처한 알리는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영화는 가짜 결혼, 가짜 부부행세 등 엉뚱하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포장한 채 이주민 사회를 코믹하면서도 빠른 속도감으로 흩뿌린다.
이집트에서 활동하며 각종 영화상을 차지해 주목받고 있는 칼레드 알 하가르 감독이 자신의 영국 유학 체험을 스크린에 옮겼다.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는 런던에서 도시의 이방인이 겪는 문화적 충격과 오해를 코믹터치로 담았다. 감독이 처량하고 팍팍한 이민자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감독 특유의 긍정적 인생관에 기인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방인으로 직접 겪은 경험이 작품 곳곳에 녹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95분. 15세 관람가. 11일 개봉.
최두성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의 추석은?…두 아들과 고향 찾아 "경치와 꽃내음 여전해"
정청래, 다친 손 공개하며 "무정부 상태…내 몸 내가 지켜야"
홍준표 "김건희, 지금 나올 때 아냐…국민 더 힘들게 할 수도"
‘1번 큰 형(러시아)과 2번 작은 형(중국)’이 바뀐 北, 中 ‘부글부글’
조국, 대선 출마 질문에 "아직 일러…이재명 비해 능력 모자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