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북문 맞은편 산격3동 치안센터에서 실내체육관 방면으로 50여m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레스토랑 '산책'은 지역 살롱음악회 산실이다. 알음 알음 몇몇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곳이었으나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문화의 향수를 즐기는 대중적인 장소로 탈바꿈했다.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 한쪽 벽면을 빽빽히 메우고 있는 LP, CD 음반이 먼저 사람을 반긴다. 총 4천여장의 음반이 오페라, 현악, OST, 재즈 등 분야별로 꽂혀 있다. 이 곳 주인이 평생 모은 보물 1호다. 그렇다고 고이 모셔두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빌려 준 것만 어림잡아 400~500장이 된다. 그런데 빌려주면서 기록을 남기지 않아 누구에게 빌려주었는지 주인은 모른다고 했다.
20평 남짓한 아담한 공간에는 피아노, 기타, 보면대, 스피커에 조명시설까지 공연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다. 또 구석 구석 빈 공간에는 그림, 사진 등이 걸려 있어 작은 갤러리도 연상시킨다. 분위기가 범상치 않은 레스토랑 '산책' 주인은 음악이 좋아 음악에 묻혀사는 권중혁(41)씨다. 여행도 좋아해 다른 지역에 가면 가장 먼저 중고 레코드 취급점부터 수소문한다. 그 곳에 들러 귀한 음반이 있으면 꼭 챙긴다.
권 씨는 영남대 전산과를 졸업한 뒤 8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다 2000년 7월 '산책'을 열었다. "좋은 음악을 좋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시작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무모했습니다. 가진 돈은 계약금 10만원이 전부였고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어 무엇을 하던 3개월을 넘긴 경우가 없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습니다" 권 씨는 건물 주인을 찾아가서 한달 뒤에 보증금을 마련해 줄테니 계약금만 받고 임대해 달라고 메달렸다. 자금이 없어 인테리어도 직접 했다. 지인들에게 빌린 돈은 아직 다 갚지 못한 상태.
장소를 정하고 나니 이름 짓는 것이 큰 고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산책'이라는 영화를 본 것이 계기가 돼 레스토랑 이름을 '산책'으로 정했다. '도시의 빛깔을 바꾸는 자연주의 멜로'라는 영화 '산책'의 컨셉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 북적대는 경북대 북문 앞을 지나 한적한 주택가로 걸어 들어와 음악과 그림으로의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이미지에 '산책'이라는 단어는 가장 잘 어울린다.
권 씨는 특색 있는 대구지역 문화로 살롱음악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살롱음악회의 매력은 연주자, 관객들이 같이 호흡할 수 있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생동감 있는 음악을 즐길 수 있는데 있습니다. 문화의 참 맛을 느끼는데는 살롱음악회가 으뜸입니다" 권 씨는 살롱음악회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2000년 8월부터 매월 1차례 이상, 지금까지 70~80여회 정도 살롱음악회를 열었다. 지난 4월 29일 국악실내악팀 공연을 가진데 이어 이달 말에는 실내악 공연을 계획중이다. 사진, 그림 전시회도 7번 정도 개최했다.
살롱음악회가 있는 날은 오후부터 영업을 하지 않는다. 관객들에게는 음료를 제공하고 연주가 끝난 뒤 연주자와의 다과회도 마련해 준다. 살롱음악회에 오면 좋은 연주, 좋은 음식까지 공짜로 즐길 수 있는 행운을 누리는 셈이다. 그렇다 보니 금전적으로 늘 손해를 본다. 한달 동안 열심히 번 돈은 고스란히 살롱음악회에 들어간다.
"지금의 살롱음악회가 있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연주자들은 출연료도 제대로 못 받고 기꺼이 연주를 해 주었습니다. 특히 돈을 벌어 주지 못해도 늘 힘이 되어 주며 두 아이를 키우는 아내에게는 늘 미안합니다" 권 씨는 연주자와 지인,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좋은 음악을 무료로 감상 할 수 있게 해 준 권 씨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건넨다.
힘든 것도 많았지만 음악을 사랑하게 된 사람이 늘어나 말 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는 권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 것 뿐이라며 인터뷰를 부담스러워 했다. 하지만 자신의 포부만은 확실히 밝혔다. "재능 있는 학생들을 발굴해서 지원해 주는 메세나 운동과 테마를 정해 연주회, 포럼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 산책음악회를 열고 싶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루어 질 것이라 생각합니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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