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 극단 '마카' 치과의사 연극인 박세호 씨

연극판에 몸을 담는다는 것은 곧 배고픔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정도로 연극판의 현실은 열악하다. 무대에 오른 연기자가 받아가는 개런티는 보잘 것 없다. 그나마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1천 만 관객시대를 넘은 영화는 한 편 제작비가 100억 원을 넘어서고, 뮤지컬이 시장을 확대해 가는 추세지만 연극은 여전히 자신의 파이를 키우지 못하고 있다. 연극판은 예나 지금이나 배고픈 열정의 터전이다.

그런데 이 험한 세계가 좋다고 기꺼이 발 벗고 나선 이가 있다.

"안타깝죠. 후배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신의 열정을 꺾어버리는 모습은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가슴아픈 일입니다."

박세호(39) 씨가 연극에 발을 디딘 이유다.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래서 후배들이 배는 곯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치과 의사인 그가 연극인이 되기로 작정한 것은 3년 전쯤. 주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연극판에서 놀고 싶어 극단 '마카'의 단원이 됐다. 그리고 극장의 후원자가 됐다.

"단원들이 남의 연습실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열정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지요."

'내가 뭘 좋아한다해도 이들처럼 좋아해본 것이 있을까?' 그의 가슴은 두근 거렸고, 곧바로 몇몇 지인들과 함께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라도 하나 마련해주자는 의견일치를 보게 됐다. 하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조금 더 보태면 저들이 맘 놓고 열정을 쏟을 극장도 만들 수 있겠다.' 그리고는 후원회를 조직해 취지를 알리고 십시일반 모금을 벌였다. 지난해 2월 그렇게 탄생한 것이 열린 극장 '마카'(대구 중구 종로2가)다. 극장에 들어서는 입구에서 마주하는 대형 간판에 새겨진 107명의 이름은 그 때 힘을 보태준 후원인들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후원자'라는 표현에 대해 어색해 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후원을 하고 있는데 조금 보태놓고 생색내는 것 같아 민망하다는 것. 그저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 쯤으로 자신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가 의사이기 때문에, 그래서 조금은 경제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취미로 연극에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 오해다. 그는 한 극단의 단원으로 또 좀 더 큰 배역을 맡았으면 하는 욕심으로 무대에 서고 있는 배우이다.

그가 연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때다. 경북대 치대에 입학하면서 연극반에 가입원서를 냈다. 연기자로 무대에 서기도 했고, 연출도 여섯 일곱 편을 했다. 대학 2학년 때는 극단 '처용'의 단원이 돼 '저승 훨훨 건너가소'라는 작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 작품은 1987년 대구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처음 연극을 본게 극단 76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이었어요. 그 때 온몸을 감싸는 전율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그냥 연극이 좋아서지만 굳이 이유를 든다면 한 작품이 준 감동 때문이다. "그 짧은 시간에 삶을 저렇게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나" 그 때 그는 연극의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혀버렸다.

영화는 어느 시간에나 틀 수 있고, 아침에 보든 저녁에 보든 시간이 달라도 똑같지만 연극은 좀 다르단다. 단 한차례 밖에 없고 소장할 수도 없지만 신기하게도 남는 감동은 영원하다는 것. 그는 연극이야마로 기계문명의 반복성과 일률성에서 비껴서 있는 예술로, 비록 나약하지만 사람 사는 것 같은 강한 힘을 갖고 있어 좋단다.

수구초심(首邱初心)이었을까. 이런 저런 이유로 멀리서 바라보던 무대를 다시 기웃거리다 지난 해 연극 '카르멘'으로 다시 무대에 섰다.

배우들과 함께 부딪쳐 땀흘리며 연습하고, 무대에 오르기 직전 손을 포개 '파이팅'을 외치는 순간, 비로소 연극인이 된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마지막으로 아껴뒀던 말을 한마디 내뱉었다.

"소위 지역의 리더라는 사람들이 정작 지방에는 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조금만 마음을 기울이면 지역자체가 업그레이드 될 텐데도 말입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사진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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