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제청대상 후보자 추천이 29일로 끝나지만 법원노조와 참여연대가 후보자를 '공개 추천'한 것을 두고 시민단체와 법원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법원노조는 26일 대법관으로 추천할 후보자 명단 12명을 확정, 발표한 뒤 홈페이지에 추천 이유 등이 담긴 추천서를 올렸고, 참여연대도 25일 7명의 후보자를 대법원장에게 추천한 뒤 명단을 공개했다.
대한변협도 이번에는 아직 내부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최근 두 차례 대법관인선 과정에서 후보자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대법원 규정은 후보자 추천은 비공개 서면으로 해야하고, 후보자 추천시 추천자가 의도적으로 추천한 후보자를 공개하면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 심의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돼있다.
자문위의 심의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하지만 참여연대나 법원노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개혁 성향의 단체들은 이런 규정에 개의치 않고 명단을 공개했고, 대법원도 공개 추천 자체를 크게문제삼지는 않는 분위기이다.
개혁 성향 단체의 공개추천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대법원의 폐쇄적인 밀실 인사관행을 고쳐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대법원은 2003년 8월 참여정부 출범 후 첫 대법관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법관 인사제도개선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처음으로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를 열었다.
그러나 위원회는 이른바 '짜고 치는' 위원회의 형식적 인선 절차를 문제삼은 강금실 당시 법무부장관과 박재승 대한변호사협회장이 위원직을 사퇴하면서 파행을 겪었다.
법원행정처가 대법관 제청권은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히자소장판사들은 대법관 후보자 추천과 임명 제청 절차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연판장까지 돌리면서 사태는 '법란((法亂)'으로 확대됐다.
최종영 당시 대법원장이 e-메일로 일선 판사들을 설득하고 제청자문위 운영을개선하기로 약속하면서 사태는 어렵게 수습됐다.
김대중 정부까지는 표면화되지 않았던 대법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은 참여정부가들어선 뒤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평가받는 대법원을 바꿔보자는 법원 내부와 시민단체의 의지로 증폭됐다.
공개 추천을 두고 법원 안팎에서 적지 않은 지지세력이 형성되기도 했으나 사법부의 '인기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례로 중도 성향의 시민단체인 선진화국민회의는 26일 성명을 내고 "일부 시민단체가 대법관 후보자 추천 명단을 공개, 추천 이상으로 간여함으로써 사법의 중우화(衆愚化)와 사법질서의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요구를 원하는 다른 단체의 주장에 "다양화 노력이 지나쳐 기존 법관 인사 시스템을 무시하고 서열을 심하게 파괴하면 외부 목소리에 의해 대법원이 흔들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불과 3년만에 추천 과정을 둘러싼 이견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그렇다고 대법원은 딱히 공개추천을 문제 삼은 적은 없으며 이번에도 어떤 조치를 취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04년 8월 퇴임한 조무제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김영란 대법관이 여러 시민단체에서 공개적으로 추천했고, 작년 11월 취임한 박시환 대법관도 참여연대가 공개추천했다.
이번에 시민단체 등에서 공개 추천된 인사들 중에는 법원 내부에서 신망이 두터운 고위 법관들이 다수 포함돼 있고 일부는 대법관으로 제청될 가능성이 점쳐지고있다.
대법원의 과거 잣대나 자체 규정을 들이댄다면 공개된 인물의 대법관 추천부터제동이 걸릴 수도 있는데도 현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2003년 '법란' 당시 이강국 법원행정처장은 "특정 단체가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국민의 사법참여라는 차원에서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헌법에서보장된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침해하고 나아가 대통령의 임명권을 해칠 수는 없다"고밝힌 적이 있다.
당시 발언은 의견 표명 정도는 사법 참여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취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이번 선진화국민회의의 성명은 공개 추천 자체가 의견 표명을 넘어섰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여러 요구와 주장은 2003년 8월 '법란' 이후 도입한 새제도에도 불구하고 대법관 인선 시스템에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반증이어서 대법원이 좀더 투명한 절차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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