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박금선 作 '꽃꽂이'

꽃꽂이

박금선

갖가지 이름을 가진 꽃들이

하나의 수반 위에 어울려 살아난다.

티격거리던 서로의 욕심 하나씩 내려놓고,

목소리 낮추어 선명한 색깔을 너에게 맞춘다.

여린 잎들의 소곤거림을 들어야하는 귀를 열어두고

향기 나누며 사는 소박한 산골사람들처럼

서로를 부둥켜안은 그들

시계바늘 속으로 걸어가는 일상을 바라보는

꽃들은 말없는 조화로 우리를 부른다.

아주 작은 가지 하나에도 제자리를 부여하는

수반 위의 세상

작은 우주가 들어와 앉는다.

하찮은 풀잎마저 어울림 속으로 잦아드는

그들에게 다가서면

도란도란 향그러운 이야기소리 들리고,

고즈넉이 선율이 흐르고,

미처 마르지 못한 눈물의 흔적 너머

보이지 않는 새로운 곳을 향해

촉수를 내밀고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보이고.

'수반 위의 세상'에는 투쟁이 없다. 갖가지 꽃들이 '어울려 살아난다'. 스스로 '목소리 낮추어 선명한 색깔'을 '나' 아닌 '너'에게 맞춘다. 그들의 삶이 '향기 나누며 사는 소박한 산골사람'을 닮았다. 약하다고 짓밟지 않고 무능하다고 밀어내지 않는다. '아주 작은 가지 하나에도 제자리를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갇혀진 '수반 위의 세상'에 만족하여 결코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곳을 향'하는 '나비의 날갯짓'까지 보여 준다. 그 세계가 바로 이상향이 아닌가.

'수반 위의 세상'은 인간이 창조하였다. 그런데 그 창조주인 인간의 세상은 어떠한가.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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