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말굽에 머리를 조아린 인조 이후 조선조의 당쟁은 죽고 죽이는 살육전으로 이어졌다. 청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던 소현세자의 돌연한 죽음에서부터 사도 세자의 비명횡사까지 조선의 역사는 상대를 죽이고서야 끝장을 보는 당쟁의 시대로 기록됐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뜻이 어긋나면 죽이고 마는 대립과 갈등은 관리들에게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었다. 그 시절 주권자인 왕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됐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은 정치 현장의 관리와 왕에겐 피할 수 없는 지뢰밭이었다. 밀리면 죽는다는 위험은 당장의 승자라고 언제까지나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태풍의 유일한 대비책은 잠재적인 위험소지를 일찌감치 잘라내는 일뿐이었다. 절대주권자 국왕도 당쟁의 논리 앞에서는 무력했다. 왕위는 고사하고 목숨마저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 결과 나타난 게 탕평의 바람이었다.
○…탕평의 의미는 유능한 인재를 붕당과 관계 없이 골고루 써 다툼의 소지와 미래의 위협을 줄이자는 데 있었다. 관리를 추천하는 이조전랑에게서 현임이 후임을 천거하는 자대권을 뺏은 것도 특정 정파의 독점 방지책이었다. 이를 주창한 영조의 꿈은 왕권의 안정이었다. 살육전의 사슬에서 주권자인 왕은 안전권으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아들을 뒤주에 갇혀 죽게 만든 비정한 아비의 인생을 살아야 했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했다. 열린우리당은 여당이 무색하게 몰락했다. 정치평론가들은 통합보다 배제와 청산을 앞세운 정권에 대한 주권의 심판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나와 다른 생각과 뜻을 보듬어 주기보단 극한 대립으로 일관한 정권의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고도 한다. 특히 대구'경북의 선거 결과는 압도적이다. 아예 여당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했다. 몇 번의 선거에서 어김없이 등장한 "싹쓸이는 막아달라"는 호소도 외면됐다.
○…과를 범한 정권에대한 주권자의 심판은 당연하다. 잘못에 대한 질책과 경고 없이는 민주주의의 싹을 피우지 못한다. 그러나 아예 싹을 잘라버린 몇 차례의 결과는 아쉬움을 남긴다. 왕조시대 인재 등용의 탕평은 주권자 국왕의 안전을 위한 일이었다. 주권자가 스스로 탕평의 선택을 포기하면 탕평으로 돌아오는 주권의 안전과 윤택을 외면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서영관 논설위원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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