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월드컵

30년 전 학창시절 연고전은 새로운 세계에의 경험이었다. 응원 덕이었다. 응원은 두 학교 학생 모두를 선수인 양 착각하게 만들었다. 경기장과 관람석은 따로따로가 아니었다. 응원은 그 자체로 모든 학생이 참여해 즐기는 축제였다. 경기 후 종로 을지로와 명동을 달리던 일도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즐거움만은 아니었다. 응원 연습이 펼쳐지는 시간이면 극성 학생들은 아예 교문을 막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을 통제했다. 그 시간 응원 연습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밤 월드컵 대토고전이 열린다. 아침부터 붉은 물결이 거리를 메운다. 월드컵은 이제 단순한 축구 경기의 차원을 넘어섰다. 남녀노소 모두 월드컵이 제일의 화제가 됐다. 오늘 밤 대한민국 방방곡곡은 응원장으로 변한다. 교도소 높은 담장 안도 예외가 아니다. 응원장소로 개방한 일부 교회는 기도 대신 '대-한민국'의 함성을 받아들인다. 북녘 땅도 월드컵의 열기가 전해진다. 거리는 또 질주하는 붉은 물결의 인파와 차량으로 넘쳐날 터다.

○…그러나 뜨거운 월드컵 열기를 식혀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일부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월드컵의 지나친 관심을 경계하며 '반월드컵' 행동으로, 월드컵 폐해를 꼬집는 스티커를 부착하기도 했다. 상업주의와 결합한 월드컵 열풍이 심각한 사회 문제를 덮어 감추고 있다는 게 이유다. 월드컵 뉴스가 군중심리를 자극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어느 네티즌은 '호국의 달'이 '축구의 달'로 변질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온 나라가 함성으로 뒤덮일 오늘 밤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승부 때문이다. 꼭 이겨야 한다는 바람이 간절하지만 승리가 100% 보장된 것은 아니다. 게다가 4년 전과 달리 심야 시간이다. 지난 한'일 월드컵 당시 외국 언론들은 한국 응원단의 열정을 부러워하며 성숙한 질서의식을 칭찬했다. 응원 후 쓰레기를 스스로 치운 붉은 물결은 승리가 안겨 준 열광을 이어가면서도 큰 사고나 광란으로의 일탈을 보이지 않았다.

○…지구촌은 여전히 대립과 마찰, 굶주림이 이어지고 우리도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다. 그러나 오늘은 16강을 향한 토고와의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대-한민국' 함성으로 모두가 하나 되는 날이다. 고민과 숙제는 뒤로 미룬 채 우리의 월드컵을 맘껏 즐기는 게 오늘 밤 할 일이 아닐까.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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