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모야모야병 잃는 박성민·정석 형제

"바깥 세상 그리워요, 축구도 하고 싶고요"

황금초교 3학년·1학년인 성민(9·대구시 수성구 두산동)이와 정석(7)이 형제는 바깥세상이 그립다. 학교 친구들도 보고 싶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축구도 하고 싶다. 화창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둘이서만 놀 수밖에 없다. 언제 쓰러질지도 모른 채.

성민이와 정석이는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다. 뇌로 가는 혈관이 서서히 좁아지거나 막히는 질환으로 뇌에 충분한 산소공급이 안되는 탓에 산소가 모자라 쓰러지게 되는 병. 사이좋은 형제는 병까지 함께 하게 됐다.

올해 제 형이 다니는 학교에 들어간 정석이. 새 생활이 기대되는지 마냥 들떴다. 침착하고 상냥한 성민이와 달리 못 말리는 개구쟁이여서 이내 친구들을 사귀었다. 하지만 한달이 채 되지 않아 말이 어눌해지고 곧잘 넘어졌다. 한쪽 팔에도 마비가 왔다.

형 성민이의 상태도 그 무렵 갑자기 나빠졌다. 4살 무렵부터 한 번 울고 나면 몸을 가누기 힘들어했지만 형제의 어머니 김경희(43) 씨는 동네 병원의 말대로 자존심 강한 성격 탓이라고만 여겼을 뿐. 하지만 동생의 몸에 이상이 오자 성민이도 드러눕는 횟수가 잦아졌다.

김 씨는 처음 아이들 병명을 들은 날을 잊을 수 없다. "두 아이 모두 큰 병원에 데려가 정밀검사를 했더니 모야모야병이래요. 특히 작은 아이는 뇌손상이 많이 됐다며 회복 가능성이 낮다고 했어요. 순간 눈앞이 흐려졌죠. 그 다음부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김 씨는 30대 중반이 돼서야 남편(45)을 만났다. 남편은 5남매 중 맏이여서 두 아들은 남다른 의미였다. 시부모 역시 두 손자를 끔찍이 아꼈다.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였지만 아이들만 보면 김 씨는 걱정을 잊었다. 철부지들이었지만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들. 든든했다.

누군가 김 씨의 행복을 질투한 것일까. 아이들에게 찾아온 병마는 김 씨를 절망케 했다. 지난 5월 중순 형제는 이틀 간격으로 함께 뇌수술을 받았다. 형제답게 꼭 닮은 얼굴에 왼쪽 머리에 난 커다란 수술 흉터마저 함께 갖게 됐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큰 아이는 잘 견뎌내고 있는데 작은 얘가 걱정이에요. 참을성이 없어지고 기억력도 떨어졌죠. 가족들 외엔 사람들을 잘 못 알아보고요. 좋아하던 책도 제대로 읽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살면서 남에게 해 될 일 한번 한 적 없는데 왜 일이 이렇게 된 건지…."

형제의 외할머니(83)는 정석이가 아프다는 사실만 알 뿐 큰 아이도 같은 병을 앓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외할아버지(94)는 두 외손자 모두 건강한 줄 안다. 김 씨는 연로한 친정부모가 놀라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차마 아이들이 난치병에 걸렸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달 말 형제는 2차 수술을 받지만 김 씨의 마음은 무겁다. 수술 후에도 6개월은 치료를 받으며 지켜봐야 하지만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큰 형편. 컴퓨터제조업을 하다 실패한 남편은 새 직장을 찾는 중이다. 이미 1천여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는 빚을 내 겨우 냈다.

김 씨는 친척들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2차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전세 보증금(2천800만 원)을 빼고 월세방으로 옮길 계획이다. 방을 얻고 2차 수술비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마냥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잘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김 씨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단단히 붙잡을 생각을 갖고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죠? 두 아이 모두 포기할 수 없어요. 현재 상태만 유지할 수 있어도 더 이상 뭘 바라겠습니까."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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