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배 고픈 것과 배 아픈 것

우리 민족은 마음자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나 '애 탄다'는 말이 그렇다. '애'라는 말이

창자를 뜻하는 우리 옛말인 것에 미루어 우리 민족은 마음이 배 속의 장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파악한다. '변소 갈 때 마음과 변소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는 속담은 장 속에 마음이 있다는 것을 더욱 명징하게 증명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말들이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뇌와 소화관 양쪽에 공통된 호르몬, 이를테면 세로토닌이나 콜레시스토키닌, 혈관 활성 장펩티드, 모탈린 등이 여럿 발견되는 것이 그 실례이다. '호르몬'이라는 말은 '자극하다', '일깨우다'의 뜻을 지닌 인체에서 항상성 유지 기능을 하는 물질이다. 여러 가지 호르몬 가운데 특히 뇌와 장에 있는 공통된 호르몬들은 장뇌 호르몬이라 부르며 식욕과 수면, 불안과 초조, 기억, 학습, 정동(靜動) 등을 관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뇌 호르몬은 장 안에서 모세혈관을 확장시켜 음식물의 소화기능을 도울 뿐 아니라, 장을 꼬아 만든 것 같은 뇌 속에서도 뇌의 혈액순환을 활성화시켜 신경세포가 정보의 처리능력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민족은 배를 바로 마음자리로 이해한 것으로 확신할 수 있다.

마음 씀씀이를 나타내는 말 가운데 '배 아픈 것은 참아도 배고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여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 중 자주 등장하는 말이 바로 양극화의 해소다. 필자 같은 한의학도로는 그 정책의 시비나 과정에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취지는 속담에서 지칭하는 우리민족의 본성과 비추어 보아 시쳇말로 딱 맞는 말이다. 양극화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비추어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명제보다 더 분명한 것은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그 민족 내부 유전자에는 배고픈 것보다 배 아픈 것을 더 못 견뎌낸다는 점이다.

사마천은 '사기'의 '화식열전'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군사들이 앞 다투어 목숨을 걸고 적을 베거나, 길거리 깡패들이 무서운 만행을 저지르는 것도 재물을 얻기 위해서이다. 아가씨들이 분을 바르고 치장을 하는 것, 도박을 하거나, 관리들이 문서와 도장을 위조하는 것, 의사들이 전력을 다해 치료하는 것 등이 모두 돈 때문이다. 돈이란 것은 능력만 있으면 한없이 긁어 모으려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돈은 본질적인 의미로 보면 먹이를 얻기 위한 수단의 압축이다. 유전자의 보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이다. 오죽했으면 "목숨 바치는 애국자는 있어도 세금 더 내겠다는 애국자는 없다."는 이런 명제가 있을까? 먹이를 한 사람이 독점하게 되면 결국 다른 사람은 배가 고파서 증오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적 안정성은 우리 사회보다 북한이 더 견고하다고 본다.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고 배 아픈 것은 참을 수 없다면, 자본주의 사회인 우리는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이 공존하는 배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의 한 구성원일 따름이다. 반면 북한은 민족 유전자의 성격상 배가 고파도 모두가 같이 겪는 고통이어서 오히려 내부는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불안감과 달리 탄탄할 수 있다.

우리는 단일 민족이고 몇 사람만 거치면 서로가 친밀감으로 이어지는 형제와 친척의 나라인 셈이다. 멀면 서로가 무관심해지겠지만 가까워서 오히려 관심은 증폭된다. 나누지 않으면 서운함과 원망이 커지고, 없으면 서로가 보살피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장년 세대가 콩 반쪽도 나눠먹던 배고프고 힘들었던 해방을 전후한 시기, 6.25 사변을 중심으로 겪었던 보릿고개를 오히려 따뜻하게 기억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본 구조는 씨족사회의 확장으로 형제와 같은 친밀성이 내부에 엉켜져 있다. 피로 이어진 형제가 찢어지면 남과 달리 치열하게 피가 날 수 밖에 없다. 형제의 우애는 가난한 집보다 부유한 집에서 칼날의 양면성 같은 무서움이 있다는 것을 재벌가의 법정 공방 집안싸움을 통해 익히 보아오고 있다. 배가 아픈 것을 못 본체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해친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민족의 유전자도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적응을 요구한다. 단지 세계화 승자의 부를 나눠 갖자는 것은 오히려 동반몰락의 하향 평준화로 귀결될 뿐이다. 그리스의 정치가 페라클레스의 연설은 수천 년을 넘어서도 배고픈 사람과 배 아픈 사람 모두에게 교훈적이다. "우리는 부를 사치나 허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이상을 높이는 유용한데에 사용합니다. 우리는 가난을 시인하는 것을 불명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을 불명예로 여깁니다."

이상곤 대구한의대 안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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