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축구가 있어 행복"…전국 달구는 '월드컵 엔돌핀'

직장인 이수민(33·대구 달서구 상인동) 씨는 요즘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5, 6일 간격으로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벌어질 때마다 열일을 제쳐두고 거리로 나서기 때문이다. 낮에는 직장 일에 매달리고 밤에는 월드컵 경기 중계를 보느라 여념이 없는데다 한국팀 거리응원을 펼칠 장소를 정하고 응원도구를 준비하다 보면 1주일이 빠듯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 씨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 지쳤던 심신이 월드컵을 계기로 활력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4년마다 찾아오는 지구촌 축제, 월드컵이 있어 생활이 즐겁다. 한국 팀의 선전 분위기를 타고 다양한 방법으로 '월드컵 엔돌핀'을 높이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스코어 내기는 기본이고 가족 또는 친구들과 단체 응원이나 기발한 응원을 계획하는 것. 월드컵을 타고 온 신바람 분위기가 사람들을 한껏 달뜨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팀도 선전을 거듭하고 있어 당분간 월드컵 열기는 전국을 달굴 전망이다.

회사원 강기훈(36·대구 북구 침산동) 씨는 요즘 직장 동료들과 '스코어 맞히기' 게임에 푹 빠졌다.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개막 경기부터 동료들과 1인당 1만 원 씩 월드컵 내기를 하고 있는 것. 그는 지난 13일 토고전에서도 2-1 스코어를 맞혀 5만 원을 벌었다. 강 씨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당일 새벽 경기 결과를 살피는 일"이라며 "덕분에 월드컵을 보는 재미가 두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스포츠 토토에 참가하는 사람도 부쩍 증가했다. 월드컵 개막 전에는 게임당 10만여 명 선에 그쳤던 스포츠 토토 관련 게임에 개막 후에는 20만 명, 한국-토고전의 경우 40만 명이 몰렸다. 프랑스 전에는 25만 5천 명이 토토를 즐겼다.

월드컵은 가족, 친구들을 더욱 가깝게 묶고 있다.

김호철(45) 씨는 토고전이 벌어졌던 지난 13일 오랜 지인들과 찜질방에서 가족동반 계 모임을 가졌다. 매월 한 차례씩 하는 정기모임의 장소를 단체로 축구 응원도 하고 피로도 풀 수 있는 찜질방으로 택한 것. 김 씨는 "월드컵이 아니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느냐."며 "월드컵 덕분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신난다."고 즐거워했다.

열렬 축구팬인 최수연(23) 씨는 축구 자체를 즐기는 중이다.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를 꼭 챙겨본다는 최 씨는 "이름만 들었던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맞붙는 모습을 보면 온몸이 짜릿할 정도"라며 "매일 밤잠을 설치는 탓에 낮에 꾸벅 꾸벅 졸기 일쑤지만 4년만에 돌아오는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눈을 부릅떴다.

이처럼 월드컵이 온 국민의 신바람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월드컵이 극도의 침체기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적 환경 속에서 거의 유일한 탈출구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임영규 대구사회연구소 사회조사센터 본부장(계명대 교수)는 "언제나 기대 이하인 정치수준과 실업, 상시적인 구조조정 등으로 늪에 빠진 듯한 현실 속에서 한국팀의 선전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탈출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전국은 월드컵에서 한국 팀이 승리를 거두면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다."며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기폭제로 작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월드컵에 편승, 현실적 문제들을 무조건 잊어버리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경계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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