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집트 여고생 부시 대통령 비판 논술로 곤욕

이집트의 한 여고생이 제출한 논술시험 답안지 1장이 대통령까지 개입하는 표현의 자유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논쟁의 주인공은 나일델타 지역에 사는 여고 2년생 알라 파라그(16).

파라그는 지난 6월 중순 교육부 주관으로 치러진 학기말 아랍어 시험에서 "이집트가 당면한 경제문제"란 논제를 받고 자신이 평소 생각해온 것을 써내려갔다.

파라그는 답안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집트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부패한 독재정권을 지원해 오늘날의 경제문제가 야기됐다는 요지의 내용을 기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현재 이집트에 군사원조를 포함해 연간 약 20억달러를 제공하고 있다.

파라그가 쓴 내용은 이 같은 원조로 25년 째 집권하고 있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독재체제가 연장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어서, 부시 대통령과 무바라크 대통령을 싸잡아 비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채점을 맡은 담당교사는 파라그의 답안지를 읽어보고 깜짝 놀라 학교장에 보고했고, 이는 곧바로 주(州) 장학관을 거쳐 교육부 본부에까지 전달됐다.

교육부 및 주 정부 장학관 3명은 파라그를 불러다가 부시 대통령과 무바라크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쓴 경위를 조사한 뒤 징계조치로 답안을 영점 처리했다.

장학관들은 보호자를 입회시키지 않은 가운데 파라그를 조사하면서 '비밀조직 요원 아니냐'고 추궁하기도 했다.

파라그는 그러나 이들이 던지는 질문의 절반도 알아 듣지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기관지 알-와프드가 지난 22일 처음 보도해 알려진 파라그 얘기는 다른 언론매체들이 뒤따라 대서특필하면서 의회로까지 논쟁이 비화되는 등 큰 파문을 몰고왔다.

언론계와 지식인들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시민으로 학생들을 키우는 게 교육당국의 의무라며 부당한 조사를 진행한 교육부를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지식인들과 시민단체들은 교육당국이 보여준 행태는 1천700만 이집트 학생들이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하며 낙제 위기에 처한 파라그를 구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라그를 둘러싼 논란으로 이집트 전역이 들썩이자 파라그가 신랄하게 비판한 대상인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개입해 29일 파라그의 답안지를 재채점하도록 지시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그러면서 공장 근로자인 파라그의 아버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딸이 정치적 견해를 표명할 때는 좀더 세련되게 하도록 가르치라"고 당부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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