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룸펜'이라는 말이 초라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멋있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느껴지기도 했다. 직장을 갖지 않고 건달로 살아가지만, 그런 지식인들의 현실 영합이나 타협을 넘어선 모습이 그렇게 보이게 했다. 하지만 그 같은 사정이 달라진 지는 오래다. 젊은 백수(白手)와 백조(白鳥)들은 차갑게 움츠린 실업자들이며, 꿈마저 접은 채 인생의 황금기를 하릴없이 흘러 보내는 경우로 각인되고 있다.
○…요즘 젊은 백수나 백조의 삶을 통해 현실과 인간형을 묘사한 소설이 뜬다고 한다. 민음사의 올해 '오늘의 작가상'수상작인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인 이상운의 '내 머릿속의 개들'을 비롯, 박민규 소설집 '카스테라', 이기호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문학과 사회'에 발표된 김애란의 단편 '성탄특선' 등이 소위 '백수 문학'을 다각적으로 펼쳐 보인 경우다.
○…이들이 소설에서 내세운 주인공은 책읽기가 좋아 자발적 백수가 되는 젊은 아웃사이더(백수생활백서), 인간은 임시적'비정규적 존재이며 최종적으론 실업자라며 반지하방에 사는 백수(내 머릿속의 개들), 취직 시험에 거듭 떨어져 애인에게 신세지는 남자(성탄특선) 등이다. '카스테라' 등은 기업 시험에 낙방한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에도 밀려난 '자해 공갈단' 백수를 부각시켰다.
○…이들 작가들이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메시지는 실업 문제와 그에 따르는 절망감이다. 그래서 그 어법은 다분히 냉소적이며, 오늘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책 읽을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일하기 싫다'(백수생활백서)는 대목도 보이지만, 그런 말 뒤에는 지금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허무와 냉소가 넘쳐난다.
○…젊은 백수'백조 소설들이 젊은 작가들에게 유행하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발적 백수'가 과연 진정으로 자발적이기만 할까. 한 젊은 실업자가 '백수도 과로사(過勞死)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가족과 주위의 눈치를 보며 취업 준비를 하거나 이력서를 계속 들고 다니는 경우는 물론 '진짜 백수'는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백수 소설'이 사라지는 날이 멀지 않기 바라마지 않는다.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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