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 연간에 활약한 국수 정운창의 바둑 입신은 드라마틱하다. 당대 국수들을 차례로 격파한 후 평양감사의 주선으로 최고수 김종귀와 벌인 대국 장면은 특히 그렇다. 전라도 보성에서 맨몸으로 올라온 촌뜨기가 단번에 최고수들을 쓰러뜨려 일약 스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프로 기사들은 이겼다고 해서 더 세다고 단정짓지 않는다. 나이 차이로 전성기가 다를 뿐 승패가 강함의 척도는 아니라고 본다.
○…한국 바둑의 토대를 쌓은 조남철 명예국수가 타계했다. 국수전의 전신인 국수 제1위전에서 시작, 60년대 무적 시대를 구가한 당대 최강 고수였다. 바둑 하면 곧 조남철로 통했고 '조남철이 와도 안 된다'는 말은 바둑판에서 으레 등장하는 말이었다. 그런 그도 김인 9단에게 왕좌를 물려준 뒤 바둑판에서 지는 날이 많아졌다. 신진 기예의 갈고 닦은 실력이 앞선 점도 있지만 나이와 건강은 속일 수 없었다.
○…일본과 중국을 앞서고 있는 한국 바둑의 오늘을 만든 일등 공신도 바로 그다. 해방 전 일본의 기타니 문하에서 수학했던 그는 김인 윤기현 하찬석 조훈현 등 후진들의 일본 유학을 적극 지원, 선진 바둑을 익히게 했다. 일본을 이기기 위해 앞선 노하우를 배워야 했던 시절이었다. 선진 바둑을 배워 온 후배들은 나이 든 그를 앞질러 나갔다.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을 설립, 오늘의 프로 단위를 확립했는가 하면 각종 신문 기전을 만들어 바둑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대만과 교류전을 하는 한편 당시만 해도 우리를 깔보던 일본과도 교류의 물꼬를 텄다. 대학'고교생 교류전을 시작으로 한'일 프로기사 교류전을 성사시켜 우리 바둑의 실력을 키웠다. 그가 집필한 위기개론은 우리 말 바둑용어의 사용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무려 십여 차례 이사를 다닌 끝에 한국기원 회관 건립 기공식을 가진 날 그가 흘린 눈물은 한국 바둑에 대한 그의 정성과 애정이었다.
○…바둑의 십계명에 부득탐승(不得貪勝)이 있다. 무조건 이기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것이다. 지면 안 된다며 무조건 이기려고 하다간 되레 바둑을 망치게 된다고 가르친다. 속임수 대신 정수를 유난히 강조한 그는 이기려고 속임수를 쓰다간 결국 스스로의 꾀에 넘어가고 만다고 했다. 이기려고 하다간 오히려 지고 마는 까닭에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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