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마치 공중에 성(城)이 떠 있는 것 같아요."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70여㎞ 떨어진 팔달령. 산 정상과 줄기를 따라 만리장성(萬里長城)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만리장성 한 귀퉁이에 내릴 때쯤 부슬비가 내리면서 짙은 안개가 산허리를 가로질렀다. 산세가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높이 솟아있던 산 정상에 있던 조망대는 하늘 위에 지은 것처럼 보였다.
지난 달 25일 이곳을 찾은 소년소녀 가장, 결식아동 등 지역 불우청소년 13명은 낯설고도 장엄한 풍경에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이들은 한국복지재단 대구지부가 매일신문사와 '투어하비' 항공여행사의 후원으로 24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는 '2006년 소년소녀 비전 찾기 해외문화체험' 행사에 참여한 길. 아이들 모두 생전 처음 나선 해외여행길이라 들떠 있는 마당에 신비로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석(14·가명·중2)이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급한 경사가 계속되는 성벽을 쉴 새 없이 달려 오르내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큰 건축물을 사람들 손으로 다 만들었을까요? 성벽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도 멋지고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의 모습도 너무 신기해요."
자금성(紫禁城)을 찾은 26일, 아이들은 자금성의 규모에 압도됐다. 황제가 집무를 보던 태화전 옆에서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궁 내부 건물들의 붉은 지붕과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골목길 뿐. 시간관계상 자금성의 남쪽 정문인 천안문(天安門)을 지나 북쪽으로 가로지르며 주요 건물 중 일부만 돌아봤음에도 반나절이 후딱 지나가버렸을 정도였다.
베이징 북동쪽으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옌칭현(延慶縣) 내 협곡인 룽칭샤(용경협)과 청나라 서태후가 살던 별궁인 이허위안(이화원)은 우명(17·가명·고2)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룽칭샤의 용 모양 에스컬레이터와 갖가지 모양의 바위산, 크면서도 아기자기한 이허위안의 풍경들에서 눈을 떼기 어렵네요. 이 풍경들이 제 일회용 카메라 필름을 모두 도둑질해가는 것 같아요."
3박4일 일정 내내 빗줄기가 계속 흩뿌렸지만 아이들은 조선족 3세인 가이드 이연(25·여) 씨의 안내를 따라 베이징과 인근 관광명소를 차례로 둘러봤다.
명주(17·여·가명·고2)는 이번 여행을 통해 자신이 참 작은 존재라는 걸 새삼 느꼈단다. "중국은 생각보다 훨씬 넓은데 제가 아는 것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유럽, 아프리카 등 더 넓은 곳까지 가보고 싶어요. 중국만 해도 이렇게 볼거리가 많은데 더 먼 곳은 훨씬 더 신기하겠죠?"
중국에서 보낸 마지막 날 밤, 아이들은 정성들여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어보며 이번 여행길을 되돌아봤다. 이 편지들은 가이드 이 씨를 통해 이달 내로 아이들 집으로 보내질 것들. 일기(18·가명·고3)는 "첫 해외여행이라 출발할 때부터 마음도 설레고 기분도 묘했는데 집에 돌아가는 순간까지도 그 기분을 있을 수 없다."며 "TV에서만 보던 만리장성과 룽칭샤를 내 두발로 걷고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를 들었다는 것이 지금도 꿈만 같다."고 적었다.
아이들을 인솔한 이들은 대구지부 소속 사회복지사 제영봉(35)·김일태(33) 씨. 영리하지만 낯을 가리고 소극적인 아이들을 다독이며 서로 친해지게 만들기 위해 밤늦게까지 함께 게임을 하는 등 부단히도 애썼다.
이들은 "많은 중·고교생이 해외로 나가 견문을 넓히고 돌아오지만 이 아이들은 처한 환경에서 버텨나가기도 벅찬 형편"이라며 "이 같은 기회가 보다 많이 주어져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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