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교육대학교 강현국 총장과 은행나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고교 졸업 후 무더웠던 8월. 시골에서 대학입학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접한 한국 근대시 소개 책자에서 읽은 시에 반해 수소문 끝에 시인이 재직하던 경북대학교 국문과에 지원했던 청년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청년도 은사의 뒤를 이어 시인이 됐답니다.

대구교육대학교 강현국(57) 총장. 처음 '꽃'을 읽는 순간 전율이 몸을 감싸며 "마치 이국여성의 살갗이 내 살을 스치는 듯한 서늘하고 낯선 느낌"을 받았다는 그를 만나 시와 음식과 교육대학이 나아갈 목표 등에 대해 한담을 나눴습니다.

"내게 시는 인간적이고 낭만적인 감성의 분출이자 그 이면엔 삶에 대한 연민이 항상 따뜻한 그늘로 존재합니다."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강 총장은 본인의 시세계를 '따스한 모더니즘'이라고 규정한다. 그렇다고 서정주의나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차가운 머리와 더운 가슴으로 시를 쓰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냐고 되묻자 지인들이 그를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라고 한다는 말로 직접적인 답을 비껴간다.

잠시 후 "요즘은 예전과 달리 마음이 편하고 인심이 넉넉한 집이 드물고 주인도 자주 바뀌고, 늘 그 곳에 가면 친구들을 볼 수 있는 그런 집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라며 환담을 나눌 음식점이 많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로맨티스트답다.

그래서일까. 생각날 때 찾는 곳이 음식점 '은행나무'이다.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 넓은 정원이 있고 흙냄새도 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음식도 웰빙 건강식 위주로 식단을 꾸며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라 좋아하죠."

반주로 들인 하향주 한 잔이 비어가자 1970년대와 80년대 초 중앙로의 소박한 생맥주 집 '가보세'와 '혹톨'에서 시와 예술을 이야기하던 추억이 꺼내어지고 고향 상주에서 자주 먹어 질렸던 갱죽은 쌀밥을 배불리 먹었으면 했던 어릴 적 목마름으로 다가왔다.

시인이 기억의 창고 한 켠에 묵혀두었던 갱죽의 목마름은 이제 시대변천에 따라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는다. 흐르는 세월의 자락에 포착된 '오래된 미래'의 한 축이다.

시적 낭만에서 대학총장으로서 삶의 미션이 바뀌자 우리 사회에 팽배한 이기주의와 소외계층에 대한 기득권자들의 배려의식 부재가 화제로 떠올랐다.

"인성은 초등학교 때 대부분 형성됩니다. 초등학교 교사들을 양성하는 우리 대학의 특성상 학생들의 직접적인 경험은 교육현장에서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죠. 이런 까닭에 예비교사들의 봉사활동에 대학교육의 역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 3월 취임과 동시에 강 총장이 내건 슬로건이 '3N데이'운동이다. 한달에 한 번 정도는 노 타이(No Tie), 노 카(No Car)로, 즉 편안한 차림에 자가용 없이 소외된 이웃사람들(Neighborhood)을 위한 봉사의 날로 삼자는 게 요지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예비교사들의 봉사와 이웃사랑에 대한 확신이 나중에 현장에서도 그대로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여기엔 지역밀착형의 대학혁신이라는 큰 틀도 함께 한다. 이 밖에 대학발전기금 모금과 출판사업 등은 CEO총장으로서 당연한 몫인 셈이다. 대학재학 때 아르바이트로 학사주점을 운영했었던 경험과 경영마인드도 무시할 수 없다.

이번엔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 지역의 예술행정이 정치적, 행정편의로 흐르는 점도 꼬집었다.

"지역의 예술행정은 동일한 사람이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다보니 재탕인 경우가 많습니다. 제3의 인물을 영입해서라도 시각과 관점의 변화를 줘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는 거죠."

편의와 속도만이 능사는 아니다. 나와 타인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가 보다.

◇은행나무

대구 남구 이천동 대백프라자 건너 편 복개도로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는 통돼지 바비큐와 두부 전문점. 도심 한 가운데 있는 식당들 중 드물게 5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짓고 있는 이 집은 넓은 마당 곳곳에 원두막과 식탁이 마련돼 있어 전원풍의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바비큐는 김천 지레 흑돼지(70~90kg)를 참숯에 훈제해 제공하며 두부메뉴는 예천농협이 공급한 국산 콩을 이용해 집에서 제조하고 있다. 특히 뽕잎가루를 섞은 두부는 건강식으로 인기.

실내에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다양한 작품을 걸어두어 작은 문화공간을 표방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여름별미로 새싹게장비빔밥도 내놓고 있다.

문의:053)476-6677

우문기 기자 pody2@msnet.co.kr

작성일: 2006년 08월 17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