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어가 머리에 빙빙 돌아" 어느 50대의 고백

"정부는 도박이 아니라며 허가를 내줬다는데, 이게 도박이 아니면 과연 무엇이 도박이란 얘긴가요?"

정성균(가명·54) 씨는 "'바다'에 빠져 익사한 사람이 비단 나 하나뿐이겠냐."며 고개를 떨궜다. "상어 돌아가는 소리가 하루종일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눈을 감아도 그 소리가 귓가에 울립니다. '이게 아닌데'하면서도 발걸음은 그쪽으로 가고 있더군요."

정 씨가 '바다이야기'에 발을 들여놓은 건 불과 5개월 전. 과일 도매상이었던 정 씨는 주변 상인들을 통해 '바다이야기'를 알게 됐다. "처음엔 누구 말처럼 횟집인 줄 알고 한 잔 하러 가는 줄 알았습니다." 취미가 바둑이었던 정씨는 도박과 거리가 멀었다고 했다.

"세번 째 갔던 날 대박이 터졌죠. 고래가 춤을 추더군요." 고래의 춤사위에 현혹된 정 씨는 점점 바다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돈이 들어올 때는 하루에 160만 원을 딴 적도 있었습니다. 하루 매상이 10만 원 안팎(순수익 4만~5만 원선)이었으니, 한 달 수입에 맞먹을 정도였죠. 일하면 뭐합니까. 하루 매상이 뻔한데. 운 좋으면 바로 고래를 낚는데 말이죠."

바다이야기에 가지 않으려 장사에 나섰지만 벌이가 시원찮았다는 정 씨는 돈이 생기면 돈을 몇배씩 부풀리고 싶은 생각에 다시 바다에 빠졌다.

"잃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이건 아닌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처량했지만 또 발길이 그쪽으로 향하더군요."

그러는 와중에 하루 30만~40만 원 잃는 것은 기본이 돼버렸다. "주변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습니다.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지더군요. 3분 만에 1만 원짜리 한 장이 사라지는 기계를 대하다 보니 1만 원은 그저 종이조각일 뿐이더군요."

잃는 날이 늘어나면서 밤새 머무는 날도 늘었다. 수중에 돈이 줄어들면서 돈을 끌어올 수 있는 곳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채가 생각나더군요. 카드깡도 했죠. 본전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바다에 '올인'하기 시작한 거죠."

올 봄 '바다이야기'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는 정 씨는 지금까지 2천여만 원을 바다에 빠트렸다고 했다.

"죽고 싶더군요. 유서를 쓰고 죽으려고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내 앞으로 된 빚은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해야 할 것 같아 차마 죽을 수 없었습니다."

전국을 돌며 '바다이야기'를 불질러 없애고픈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이내 포기했다는 정 씨.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아침마다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일까?'(베르나르 베르베르 '뇌' 중에서)

정성균 씨와 같은 사람들이 왜 자꾸 늘어만 갈까? 무엇이 그들을 성인오락실로 몰고가는 걸까?

계명대 정신과 김희철 교수는 "어떤 형태든 보상을 받게 되면 중독으로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면서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인터넷중독 등 모든 중독은 공통적으로 뇌에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물질(도파민)이 과다 생성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행위에 빠지게 되는 심리적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는 것.

그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다른 방향으로 자기 욕구를 분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경기 위축으로 벌이가 줄면서 가장(家長)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도박'으로 이어졌다는 것.

대구가톨릭대 심리학과 성한기 교수는 "도박중독에 빠지는 이들은 대개 자기 통제력이 보통사람에 비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인생역전을 꿈꾸는 이들의 일탈로 보기보다 사회적 시스템 문제가 보다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구대 사회학과 홍덕률 교수는 '사회적으로 만연한 한탕주의'에 무게를 두었다. 홍 교수는 "한 방에 인생을 바꿔 보겠다는 한탕주의가 사행성 게임으로 나타난다."면서 "서민들이 정상적인 삶의 방식으로는 소박한 꿈들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좌절감에서 오는 것"이라 못 박았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