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은 참 멀다. 대구~포항 고속도로가 개통된 덕분에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한 번 가려면 꽤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강원도 땅이었다는 사실이 절로 실감난다.
하지만 울진으로 가는 길은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조금은 지루해 하던 체험단들도 짙푸른 동해바다가 환하게 웃으며 반기자 이내 탄성을 터트린다. "엄마, 바다에 왜 얼룩이 져 있어요?" "그 건 바다 밑에 자라고 있는 미역 같은 해초 때문이란다. 어쩜 저리도 맑을까."
대구를 떠난 지 3시간. 친환경엑스포공원이 왕피천 너머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공원관리사무소 김명중(49) 운영담당의 안내로 친환경농업관·야생화관찰원 등을 둘러보는 동안 코흘리개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아저씨, 전 애기똥풀은 잘 아는데 이 꽃은 뭐예요?" "오리농법은 어떻게 하는 거죠?"
공원 입구 소나무 숲 속에 마련된 친환경농산물직판장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지갑을 열기에 바쁘다.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우리 농산물이 값까지 저렴하니 당연한 일이 아닐까. 공원관리사무소에서 먹기 좋게 썰어 내놓은 친환경 복수박은 기분 좋은 덤이다.
차로 5분 거리인 경북도 민물고기연구센터에서는 이진환(35) 씨의 안내로 1마리에 2천만 원이나 한다는 철갑상어 등 진귀한 물고기 관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역시 먹이주기 체험. 나눠 준 사료는 금방 바닥이 나고 사료자판기 앞에 줄을 서기 시작한다.
'좋아! 가는 거야. 이 분위기를 살려서 쭉 가는 거야.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하지만 웬걸.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찾아간 양떡음떡마을 앞 개울에는 물고기가 보이지않는다. 아니, 있긴 하지만 어설픈 초보들에게 잡힐 놈들이 아니다. 보다 못한 이상철(52) 이장이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는데 옷 좀 젖는 게 뭔 대수요. 애들 보는 것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인데." 뾰로통하던 정민재(6)도 큼지막한 피라미 한 마리에 입이 귀에 걸린다.
물고기 대신 다슬기 한 소쿠리를 담아 돌아온 마을 회관에는 된장찌개 냄새가 구수하다. 마을 할머니들을 도와 밥을 퍼는 김문자(39·여) 씨와 반찬을 나르는 장현숙(36·여) 씨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가득하다.
다듬이질 체험시간은 스트레스 해소에 딱이다. 아이들은 처음 해보는 재미에, 어른들은 아련한 추억들을 더듬으며. "함께 오지않은 남편들 생각하며 다듬이를 맘껏 두들겼더니 속이 다 후련하네요." 조성실(37), 조성혜(44) 자매는 아이들보다 더 신이 났다.
시골 인심은 아직도 후하다. 마당에 지핀 장작불이 사그라질 즈음 감자, 피데기 오징어에 이어 오징어회에다 게까지 내온다. 이런 세상에! 소주 한 잔에 서먹한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뿌듯한 마음으로 민박집을 향하는 길은 반딧불이가 환하게 밝혀준다.
이튿날 새벽, '꼬끼오~ 꼬끼오~' 수탉 울음소리에 선잠을 깬다. 정말 여름이 끝나가는가 보다. 새벽 4시가 넘었는데 아직 깜깜하다. 내친김에 백암온천까지 달려가 온천욕을 하고 돌아온 체험객들의 얼굴에 반짝반짝 윤기가 흐른다.
나지막한 마을 뒷산 자락에 조성된 농사체험장에는 잘 익은 옥수수·들깻잎·조·수수·콩이 낯선 도시민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먹을 만큼만 따가."라는 이상철 이장의 말은 모두 귓등으로 흘려들은 듯 비료포대는 옥수수로 금세 꽉 차고 깻잎 따기는 여우비가 후두두 떨어지고 나서야 멈춘다.
수백 년씩 된 아름드리 노거수 그늘 아래 차려진 야외체험장은 잔칫집 분위기. 떡메를 쳐 양떡(인절미)을 만들고,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홍두깨로 칼국수를 밀고…. 주민과 손님이 따로 없다. 모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며 정을 나눈다. "나중에 꼭 또 놀러 와. 이만큼 공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데가 어디 있겠어?" "예, 할머니, 다음에는 아빠도 같이 올게요. 건강하게 계세요." 모두의 마음에는 활짝 핀 백일홍보다 더 고운 정이 싹트고 있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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