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생활속의 문인화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그래선지 문화계도 더없이 풍요롭다. 곳곳에서 공연과 전시가 열리고, 그만큼 내 발걸음도 바쁘게 움직인다. 다양한 성격만큼이나 개성이 넘치는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때로는 새로운 자극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여유를 얻기도 한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요즘 전시장을 찾으면서 가끔 문인화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사실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문인화를 설명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표현 대상이나 기법과 같은 형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작품에 내재한 정신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문인화는 그림이면서도 단순히 화법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서법이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대상의 사실적인 형태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회화의 특성이라면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속에 자신의 정신적 경계를 담아내고자 하는 의식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문인화이다. 그래서 문인화는 세련된 기교나 섬세하고 화려한 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려 인격을 함양하고 삶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내고자 하기 때문에 투박하고 어눌함이 더 큰 미덕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문인화는 우리네 삶에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으로는 사군자를 중심으로 하지만 그 역시 문인들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상이어서 그것을 즐겨 그렸을 뿐이며, 따로 소재에 제약될 필요는 없다.

생활 주변에 널려 있는 대상들의 숨겨진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고 그것을 자신의 정신세계와 연결함으로써 예술적 창조성을 담아낼 수 있다면 표현 기법이나 숙련도는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문인화는 특히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서 자기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인생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의미를 제공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인화가 기존의 편견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생활예술의 한 부분으로 정착되도록 하는 것은 허황된 꿈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노력만 있다면 충분히 성취할 수 있는 문화적 이상이다.

사공 홍주(화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