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지를 찾아서 22회 불교 성지⑧-남해 보리암

간절히 기도하면 들어주는 3대 관음성전 가운데 하나

◈ 중생의 슬픔을 함께하는 관세음보살

슬프다. 중생이기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라 고난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슬프다.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갖가지 괴로움(四苦)을 겪는 사부대중(우바이 우바새 비구 비구니)은 위기에 처하면 저도 모르게 '관세음보살'을 읊조린다. 그만큼 간절하게 나의 현실적 고통을 해결해줄 절대자가 필요하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사람이 현실세계의 고통을 덜기위해 관세음보살을 찾는다. 불교 교리를 잘 알고 모르고는 관계없다. 고난에 처해있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진 그 어떤 사람이라도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청하면, 천 개의 귀 천 개의 눈을 갖고 있는 관세음보살이 그 고뇌를 구제해준다. 왜? 관세음보살은 "단 한명이라도 고뇌를 피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영원히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언제나 사부대중의 편을 들어주는 착한 보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신도들에게 관음보살은 가장 인기가 있는지도 모른다.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면 꼭 들어준다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가운데 한 곳인 남해 보리암(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은 그래서 사시사철 기도객이 끊이지 않는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27일, 월요일의 보리암도 순례객들로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는 도량

강원도 양양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가운데 한 곳인 보리암은 남해 금산의 한복판인 관음봉에 기대 서 있는 유서깊은 기도 도량이다. 27일 오전 7시 화원IC에서 구마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칠원 IC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사천 IC를 거쳐 삼천포대교를 건너 남해 금산(錦山)까지 183km를 3시간 달려 오니 비바람과 산안개가 내려앉아 시계가 흐린데도, 희끗희끗한 화강암들이 비단을 둘러쳐 놓은듯 아름답게 다가선다. 그 유명한 남해 금산 가운데서도 가장 장엄한 기운이 느껴지는 관음봉이다. 매표소를 지나 보리암까지 4.3km. 비바람과 안개가 눈앞을 가려 고양이처럼 살곰살곰 조심스레 산길을 올라간다. 한참 올라가자 문득 '여기가 극락인가' 싶은 절 입구가 나타난다. 일주문도 없이 바로 보리암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마치 극락으로 가는 길인양 단정하게 놓여있다. 은근 슬쩍 바람결에 그 한자락을 들어주는 산안개 저 너머로 파도가 철썩이는 남해 바다가 보인다.

◈ 남방 불교 비화 서린 바사석탑

그 남해를 타고, 고대 인도 아유타국 공주가 가락국에 왔다. 파도를 헤치고, 가락국에 도착한 아유타국 허황옥 공주는 김수로왕과 국제결혼하여 왕비가 되었고, 직접 석탑은 구지봉 아래 호계사(虎溪寺)에 안치했다. 인도에서만 나는 바사석으로 만든 바사석탑(婆娑石塔, 경남도유형문화재 74호)이다. 허왕후와 바사석탑 그리고 장유대사(허왕후 오빠)를 둘러싼 얘기는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전래설의 핵심이다. 서기 372년 중국 전진에서 순도가 고구려에, 384년 인도 마라난타가 백제에, 527년에 고구려 묵호자가 신라에 불교를 전했다는 북방전래설보다 무려 수백년 앞서는 해동불교 연기 비화가 남해 보리암에 서려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가락국의 김수로왕은 바사석탑을 안치한 구지봉에서 탄강하여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됐으며, 허왕후와의 사이에 왕자 10명, 공주 2명을 낳았다. 이 가운데 일곱 왕자는 외삼촌 장유선사를 따라 출가했으며, 장유선사는 하늘과 산 그리고 바다가 어울려 천태만상의 변화를 보이는 보리암에 터를 잡아 아유타국에서 모시고 온 관세음보살을 모셨다고 한다.

◈ 인도에서 모셔온 관세음보살

보리암 보광전의 관세음보살이 바로 그때 관세음보살이라고 전해진다. 원래 인도 향나무로 만들어진 목불인데 개금불사를 하였다. 우리가 보아서 관세음보살 왼쪽에 해상용왕상, 오른쪽에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남순동자가 서있다. 오른손에 감로수를 들고 있는 보리암 관세음보살은 기도하면 꼭 한가지는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어서여서 연중 찾아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기도 처인 보리암은 일년 365일, 하루 24시간 개방돼있다. 누구나 와서 잘 수 있고 시간맞춰 공양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 4번(새벽 3시30분, 오전 9시, 오후 2시, 오후 6시30분) 예불에 빠지면 안된다. 기자가 보리암을 찾았던 지난 27일, 보리암 보광전의 아침 9시 예불에는 신자뿐 아니라 20 여명의 스님들도 동참했다. 그만큼 보리암이 불교신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성지임이 확인됐다.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지극히 부르고 기도를 드리면 '칠난삼독'(七難三毒)을 피할 수 있다고 법화경 보문품은 가르치고 있다.

◈ 기도와 실천 곁들이는 것이 기본

관세음보살은 입과 몸 그리고 마음으로 부를 수 있다. 우선 입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칠난', 즉 큰불이 나도 탈 일(火難)이 없으며, 물에 빠지더라도(水難) 죽지 않고, 바다에서 바람(風難)을 만나 죽음에 임박했더라도 해탈을 얻으며, 죽음의 칼(劍難)이 저절로 부러지고, 마귀(鬼難)가 해를 끼치지 못하며 유죄무죄 상관없이 감옥의 고통(獄難)을 당한 자들이 자유로와지고, 원수나 도적(賊難)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면 '삼독', 즉 음욕이 있는 자는 맑아지고, 분노하는 자는 기쁨을 느끼며, 어리석은 자는 지혜를 얻게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몸으로 기도를 드리면 훌륭한 자녀를 얻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가지 명심할 일은 아무리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하심이 크고 깊다고 해도, 우리의 실천행이 없으면 허사라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언제 어디서든지 대중의 고통을 덜어주고, 자비를 베풀며 가르침을 주지만, 신자들 스스로 육신을 잘 다스려 선정과 지혜를 얻으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렇기에 관음도량인 보리암이 낮밤 없이 기도객들로 붐빈다. 보리암 보광전에 모신 관세음보살 외에 상주해수욕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해수관음도 장관이다. 지난 월요일((27일), 몰아치는 비바람을 헤치며 해수관음 전에 초를 밝히고, 기도를 드린 여신자의 말간 얼굴에서 이미 세상번뇌는 사라지고 없다.

최미화 기자 magohalmi@msnet.co.kr

남해 보리암 팁

남해 보리암은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 후

조선 개국에 성공해서 더 유명해진 성지

# 남해 보리암은 우리나라 불교의 북방전래설보다 292년 앞서는 남방전래 연고지(緣故地)일 뿐 아니라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원효대사는 절이름을 보광산 보광사라 불렀다. 그 뒤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와 선유제(임금이 되기를 비는 제사)를 드리고 조선 개국에 성공해서 유명해졌고, 조선조 제18대 왕인 현종은 왕실 원당으로 삼고 절 이름을 보리암으로, 산이름도 보광산에서 비단산을 뜻하는 금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지난해 완공된 설법전(예성당) 왼쪽으로 난 청죽(靑竹)길을 따라가면 이태조 전패(殿牌, 사진 1)를 모신 추념각(사진 2)이 나오는데 이곳의 전망이 기가 막힌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해수관음이 남해 보리암에도 세워지게 된 것은 고산 스님의 예언 덕분이다. 고산 스님은 "해수관음을 세우면 중생들에게 더없는 기도 도량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헬기를 이용하여 보리암으로 해수관음을 옮기던 날 광채가 나타나는 이적으로 더 유명해졌다.

금산의 제1전망대라고도 불리는 해수관음상 앞에 있는 3층 석탑(바사석탑)은 높이 165㎝정도로 나지막한데, 이 탑 앞에 나침반을 세우면 S극이 북쪽을 가리키는 이상한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최미화 기자

사진설명(위로부터)

◇남해 보리암 이성계 추념각에 모셔져 있는 이성계 전패.

◇백일 기도를 드린 끝에 신령의 감응을 받아 조선개국에 성공한 이성계 기도처에 세워진 추념각

◇허 왕후가 가져온 바사석으로 만든 3층 바사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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