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자랐나요?
가. 말똥말똥…책과 함께 시작된 영유아기
아버지는 당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 신분이었기에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어 영아기를 맞게 된 딸을 데리고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남들처럼 유아에게 좋다는 책이나 놀이감 등을 들여놓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다행히 남들이 정리 차원에서 버리는 책을 구해 와서 하루 종일 아이에게 읽어 주고, 밤이면 손그림자를 이용해 한 면이 온전히 벽으로 남아 있던 공간을 이용한 그림자 놀이극을 해 주는 게 전부였다. 대신 얼마나 많은 노래와 얘기를 들려주었던가? 지금도 노래만 들으면 곧바로 개사하여 상황에 맞게 애드립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엄마의 솜씨는 그 때 자연스럽게 습득된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
책이 다양하게 구비돼 있지 못해 매일 같은 책을 읽어준 까닭에 아이는 거의 외울 지경이 되었고, 책의 내용을 말하면 알아서 그 책을 뽑아달 줄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책이 즐거움의 대부분을 차지한 시절에, 아이에겐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전공 서적에서만 볼 수 있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왔다.
기저귀보다 글을 먼저 떼고, 말하기와 읽기 능력이 거의 동시에 발달되었다. 어린 애 데리고 너무 열심히 가르치는 게 아니냐는 주변의 핀잔도 간혹 있었다. 여유가 없어서 집 앞 놀이터 외엔 변변하게 나들이 한 번 못하는 엄마에게 아이가 동화되고 있다는 충고였던 것 같다.
▶ 산으로 들로…여행을 떠나요
아이가 두 돌이 지나면서 손길을 좀 줄여도 될 만하다 싶을 때 엄마가 교직을 갖게 됐다. 이어 아버지가 대구 소재 대학의 교수직을 얻어 가족 전체가 이사를 하게 되었다. 무(無)에서 출발한 삶이라 그리 넉넉하진 않았지만 맞벌이를 하게 되니 전처럼 궁색하진 않았다. 또 살던 서울을 떠나 지내게 되니 그리운 사람도 많아 주말이면 서울로 대전으로 광주로 새 터에 자리 잡는 친구들을 보러 늘 움직였다.
아이는 어떤 도시란 게 그냥 이동 장소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러다 일본으로 여행을 할 일이 생겼다. 아이가 만 세 돌이 지났을 때였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아이는 좀 긴장한 듯 보였다. 풍경과 사람 모습은 비슷해도 간판에 있는 글씨고 뭐고 하나도 읽을 수 없는 이상한 곳에 자신이 와 있다는 걸 알게 된 아이는 "여기는 광주나 서울이랑 다른 곳이냐?"고 물었다. 아이에게 처음으로 '나라'라는 개념이 생겨난 때였다.
그 후로 아이에게 가능한 한 많은 해외여행이란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모, 외삼촌 등이 해외에 많이 나가 살고 있어 좀 더 마음을 쉽게 낼 수가 있었다. 미국, 유럽, 러시아, 동남아 등 아이의 여행은 미지의 세상에 대한 눈뜸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앰이고, 겨드랑이 속에 숨겨진 날개를 돋아나게 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Sound of Music'이란 영화를 보면 노래를 전혀 모르던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온다. 도레미를 읊조려도 전혀 생소한 용어들이라 맹숭맹숭한 아이들에게 주인공은 새로운 접근을 한다.
'Let's start at the very beginning, very good place to start. When you read you begin with A, B, C, When you sing you begin with Do, Re, Mi. Do, Re, Mi the first three note…'
그러면서 개개 음의 동음이의어를 찾아 연결해주고 그들을 조합하면 어떻게 되는지 시범을 보여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음들에 의미 있는 단어들을 얹어주면 노랫말이 됨을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그것도 대자연 속에서 말이다.
부모나 교사의 역할은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난 늘 그렇게 생각한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본인에게 와 닿지 않는 내용들을 억지로 외게 하는 것보다, 설렁설렁 바람처럼 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잠재된 교육과정이 있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재미에 빠져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러나도록 방향 지어주는 것이 아닐까?
▲ 글을 쓴 김광숙 씨의 딸 김기연 양은 대구 대곡중학교-한국과학영재학교를 거쳐 올해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 학부모들의 자녀교육기 원고를 기다립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느낀 마음, 어려웠던 부분, 소중한 경험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전자우편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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