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휴대전화 발신번호, 오히려 '악용' 많다

번호 조작 가능…욕설·스팸광고 난무

대학생 노모(22·여) 씨는 최근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발신번호가 '0'으로 표시된 문자메시지에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설로 가득했던 것. 욕설 메시지는 여러 차례 거듭됐고 참다못한 노 씨는 이동통신사 고객센터를 찾아 발송자를 알아 냈다. 하지만 충격은 더 컸다. 범인은 평소 인사를 하며 반갑게 지냈던 주변 사람이었던 것. 노 씨는 "범인이 문자메시지 발신자 번호를 조작하면 누군지 모를 줄 알았다고 했다."며 "고객 편의를 위한다는 발신자번호 표시 조작이 오히려 피해를 주고 있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직장인 이모(32) 씨는 별 생각없이 전화를 받았다가 화가 치밀었다. 발신자번호에 휴대전화 번호가 찍혀 있어 의심없이 받은 전화가 대부업체의 마케팅 전화였던 것. 이 씨는 "업무 회의 도중에 결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받았더니 난데없이 녹음 메시지가 들려와 어리둥절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의 발신자번호표시(CID) 서비스가 악용되고 있다. 발신자 번호를 조작해 욕설 문자나 불법 채권 추심, 스팸 광고 등을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이들은 주로 인터넷 가상발신번호 서비스를 통해 발신번호를 조작하거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발신자 번호를 임의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실제 지난 9월 부산에서는 발신자 번호를 임의로 조작할 수 있는 인터넷폰을 이용, 법원이나 경찰서 대표번호가 표시되도록 한 뒤 경찰서나 관공서 직원이라고 채무자들을 속여 돈을 받아낸 신용정보회사 직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앞서 지난 2월에는 인터넷전화의 발신자 번호를 조작해 이동통신사 고객센터를 사칭한 뒤 휴대전화 가입자의 소액결제 인증번호를 알아내는 수법으로 4천여만 원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특히 누군지 알 수 없는 번호로 들어오는 욕설 문자메시지 때문에 호소하는 경우도 적잖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음성전화의 발신자번호표시를 변조할 경우 이를 처벌토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12월 정기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지만 아직 개인 간 문자메시지 발신자 번호 조작 피해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 경찰 관계자는 "번호 변경 시 반드시 해당 전화번호에 대한 승인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서비스 업체들도 피해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의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욕설 등 문자서비스 문제로 고객센터를 찾는 경우는 일주일에 1, 2건 정도"라며 "발신번호 조작을 막거나 피해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문자를 받은 뒤 7일 내에 고객센터를 방문하면 원 발신자번호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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