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리샴의 소설이나 영화로 제작된 '펠리칸 브리프'는 음모론에서 출발한다. 미국 대법원 판사 중 두 명이 같은 날 살해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 것을 두고 한 법대생이 정황적 증거들만을 모아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이것이 우연의 일치처럼 사실이더라는 이야기다.
영화 '컨스피러시'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하는 주인공은 신문에 등장한 자질구레한 소식들을 이리저리 짜맞춰서 음모론을 만들고 다닌다. 역시 이렇게 만들어진 음모론 중에 하나가 실체로 드러나면서 영화는 흥미를 더해간다.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는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한 마을의 진상을 숨기려는 거대 기업의 음모를 파헤치는 변호사 사무실 직원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세 편의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것. 이것도 모종의 음모일까? 물론 믿거나 말거나식의 음모지만.
음모론(陰謀論·conspiracy theory)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전혀 현실성이 없어보이는 음모론조차도 구체적인 증거(억지로 끼워맞추기식이 될 수도 있지만)를 갖추면 그럴 듯한 실체로 바뀐다. 음모론을 다룬 대표적 저서 중 하나인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데이비드 사우스웰)에는 미국이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정황 증거를 제시했고, 존 F. 케네디 역시 용공주의자인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 아니라 음모의 희생양이었다는 역사적 배경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도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아있다거나 남극 빙산 밑에 히틀러의 비밀 나치기지가 존재한다는 음모론은 아무리 근거를 갖다대도 황당함을 지울 수 없다.
소설이나 역사 속이 아니라 현실에도 음모론은 존재한다. 질병산업에 대한 충격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은 '질병판매학'(Selling Sickness·레이 모이니헌 외)은 거대 제약사들이 약을 팔기 위해 건강한 사람조차 환자로 만든다는 음모론을 다루고 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 대인공포증, 월경전 불쾌장애 등 모르면 그냥 넘어갈 증상들도 질병으로 묶어 '건강한 정상인 시장'을 개척한다는 내용. 금융가에선 '엔화 음모론'이 회자되고 있다. 엔화 가치가 20여 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미국이 묵인해주기 때문이라는 것.
엔화 약세로 도요타 자동차 같은 일본제품의 달러 가격이 떨어져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데, 예전 같으면 엄청난 엔화 절상 압력을 가했을 미국이 중국 위안화 절상 문제만 거론할 뿐 일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모종의 음모가 있기 때문이는 내용이다.
늘상 접하는 자연현상도 음모론으로 풀이되곤 한다.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기다란 띠모양으로 생기는 비행운(飛行雲), 즉 콘트레일(contrail)과 비슷한 켐트레일(chemtrail) 음모론이 그것이다. FBI가 수사하려다 중단했다는 이야기와 미국 하원에서 켐트레일을 우주 무기로 분류한 관련 법안을 상정하려했다는 이야기 등이 켐트레일 존재의 근거로 등장한다. 국적 불명의 비행기가 호흡기 관련 질병을 유발하는 성분을 뿌리는 과정에서 켐트레일이 발생하는데, 이는 분쟁지역에서 인구를 감소시키기 위한 군사전략이라는 놀랄만한 결론까지 내세우고 있다. 네티즌들은 켐트레일 증거사진(국내 촬영분 포함)이라며 인터넷에 올려놓고 있다.
지금도 새로운 음모론이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등장하고 퍼져나간다. 음모론은 시대의 산물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 정보를 믿을 수 없는 사회, 어쩌면 건강하지 못한 우리 시대가 음모론의 본거지는 아닐까?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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