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장수가 병법을 모르면…

우리 지도자(노무현 대통령)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언론이, 야당이, 국민이 흔들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自重自愛(자중자애)하는 의연함을 잃어서다.

어떤 맞바람에도 맞서겠다는 통치자로서의 사명감과 용기보다는 오기와 분노가 앞서고 있다. 자신이 왜 흔들리고 있는지, 무엇이 사면초가를 자초했는지를 깨달으려 노력하는 省察(성찰)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좌충우돌 모기 보고 칼을 빼듯 '오버(over)'하며 분을 이기지 못하는 흔들림을 보이고 있다. 令(영)은 서지 않고 고함소리만 커져가는 敗將(패장)이 돼가는 모습이다. 꼽아보면 4년 전 大選(대선)에서 이겨 본 뒤로는 이제껏 제대로 이겨본 싸움이 없기도 하다.

언론과의 싸움에서도 아직 항복을 못 받아냈고 야당과의 싸움에서도 5대 1쯤으로 밀리고 자기 黨(당) 옛 부하들과의 內戰(내전)에서까지 치받히고 있다. 스스로도 '어디서 굴러들어왔다'고까지 비하했다. 누가 봐도 의연한 통수권자가 아닌 패장의 모습이다. 지난 4년간 그의 戰歷(전력)으로 볼 때 승부수에는 강했는지 모르나 兵法(병법)에는 어두웠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이 그가 실패한 패장임을 조목조목 말해준다. 우선 그는 병법 11편에 나오는 '常山(상산)의 率然(솔연)과 같은 군대(국가)'를 만들지 못했다. 솔연은 중국 상산에 사는 뱀으로 상대가 머리를 치면 꼬리가 같이 나서 싸워주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같이 달려들어주고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공격하는 뱀이다.

자신이 공격당할 때 親盧(친노) 非盧(비노)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일사불란 옹호해주는 솔연 같은 조직과 민심을 그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꼬리와 머리가 제 몸통을 치고 들어오는 지경이 돼 가고 있다.

그런 갈라진 조직으로 정치판의 권력 다툼에서 흔들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앙숙인 오나라 월나라 사람이 한배를 타고 가며 속으로는 딴마음을 품고 있더라도 일단 배가 뒤집힐 위기가 닥치면 한몸의 왼손과 오른손이 움직이듯 서로를 구한다는 吳越同舟(오월동주)'相救他如左右手(상구타여좌우수)의 병법 역시 터득하지 못했다.

우리당이 항해 중에 쪼개져 난파당하는 위기에서도 오른손'왼손이 움직이듯 서로를 구하려 하지 않으니 손자가 볼 때는 용병술이 모자란 패장이 아닐 수 없다.

'부하에게 여러 번 賞(상)을 주는 것은 지휘에 궁색해서다'는 손자의 지적 역시 국회의원 도지사 떨어지면 다시 장관 감투 씌워주고 청문회서 떨어지면 특보 자리 만들어주고 몇 번씩 돌려가며 상을 내리는 코드 인사를 말하고 있다. 손자가 볼 땐 인사에도 그는 패장인 셈이다.

그뿐 아니다. 故將有五危(고장유오위=장수에게는 다섯 가지 위태로움이 있다)라는 손자병법 8편을 봐도 노 대통령은 패장 쪽에 가깝다.

'지나치게 용기만 내세우면 패할 수 있고'라는 一危(일위=첫 번째 위태로움)는 지나친 自主(자주)의 강조가 반미나 동맹국 이탈로 패망의 위험을 초래함을 가리킨 것이요, '분을 이기지 못해 급하게 행동하면 수모를 겪는다'는 두 번째 危(위태로움)도 군대 원로를 직무유기자로 내몰고 우방국을 엉덩이에 비유하고 자신이 등용한 총리를 실패한 인사로 폄훼하며 분에 받쳐 막말을 쏟아내는 것은 거꾸로 비난의 수모를 당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제 兵士(병사)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면 필요할 때 과감히 행동할 수 없다'는 다섯 번째 危(위) 역시 비리로 구속된 측근들을 사면으로 너도나도 풀어주는 사랑(제 식구 챙기기)은 자가당착의 반개혁이 되니 이 또한 손자가 보건대 패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병법의 기초를 모르는 장수가 계속 오기와 분노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그 군대(국민)는 계속 헛된 피만 더 흘리고 다치고 죽어가야 한다. 남은 1년이 그래서 두렵고 답답하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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