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가슴이 따뜻했던 날들] 우리들의 이야기

# 도둑님들, 감사합니다.

내가 집을 살 수 있도록 해 준 은인은 바로 '도둑님'(?)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집 계약금 300만원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약 7년전, 경산 계양동에 15평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던 시절이었다. 맞벌이로 집을 비운 사이 도둑이 들어 집사람이 패물을 모아둔 것을 통째로 들고가버렸다. 워낙 가진게 없이 살던 시절, 그 패물통에도 역시 변변찮은 것이 들어있을리 만무했다. 고작 그 안을 채우고 있던 것은 매년 기념일마다 내가 선물한 도금 액세서리들. 다 합쳐봐야 시가로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금붙이들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아내는 손해보험사에 300만원의 패물을 잃어버린 것으로 신고를 했고, 도둑이 든지 몇 주일이 지나자 통장으로 300만원의 보상금이 입금됐다.

당시 900만원의 아파트 계약금 중 딱 300만원이 모자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터에 딱 맞게 생각지도 않은 돈이 생겨난 것이었다. 아마 그 때 그 도둑님들이 아니었다면 내 집 장만이 훨씬 늦어졌던가, 아직도 전세를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짜 액세서리와 바꾼 300만원의 내 집 마련 자금. 우리부부의 인생에서는 그 도둑님들이 진짜 산타할아버지였다.

서상준(40·경북 경산시 옥산동)

# 사랑은 희생이다.

둘째며느리인 나. 25살에 시집을 가서 22년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처음부터 같이 살다보니 '왜 내가 모셔야 하나'라는 투정할 겨를도 없이 수발하는데 바빴고, 미운정 고운정이 쌓여갔다. 하지만 마음 고생도 많았다. 별난 어머님의 성격을 알지 못하는 시숙과 시누이는 '왜 이것밖에 못하느냐'며 나를 타박했고, 그럴때마다 속으로 눈물을 삭여냈었다.

그러던 중 어머님이 병환으로 서울에 계신 시숙에게로 옮겨가게 되셨다. 시원섭섭한 마음을 달랠길 없어 허탈하게 앉아 있는데 아들이 곁으로 와 등을 두드리며 말을 건냈다. "어머니,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베푸신 희생 덕분에 저희에게라도 좋은 일만 가득할 겁니다."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베풀기만한다는 생각에 힘들어 했는데 어느새 다른 큰 사랑이 곁에 와 있는 것이었다.

얼마전 아들녀석 수능날도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아들이 '엄마, 아빠 앉아보세요.'하더니 "수고하셨습니다."라며 큰 절을 하고 씩씩하게 집을 나서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할머니께 했던 것만큼 저도 부모님 깍듯하게 모시는 아들이 될께요."라는 예쁜 내 아들. 사랑은 먼저 줘야만 원하는 사랑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게 아닌가 싶다. 이제 내가 시어머니께 드린 사랑, 아들에게 듬뿍 받으며 살아야지.

박미연(46·대구 달서구 대곡동)

# 룸메이트야, 고마워~.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을 이곳 저곳 직장을 옮겨다니고 있을 때였다. 청도 시골출신인 나는 마땅히 있을 집 조차 구할 형편이 안돼 청도에서 대구로 통근을 하기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왔다갔다 하는 일이 힘들다보니 어렵게 구한 일자리마저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을 '백조'로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을 즈음, 뜻하지 않게 친구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 밀었다. "좁은 집이지만 한번 같이 살아보지 않을래?"

그래서 나는 올 4월부터 친구 2명과 함께 원룸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다 큰 성인 3명이 한 방에 어울려 뒹굴다보니 사소한 일로 의가 상할법도 하지만, 아직은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가며 행복한 동거를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친구들의 든든한 원조를 얻어서인지 마음에 꼭 드는 일자리도 찾았다.

"영은아, 경숙아, 너희들 때문에 내가 올 한해 너무 행복했던 거 알지?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박미선(26·대구 수성구 수성동)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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