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은 현인에게조차 가벼운 것이 아니다'라고 키케로(기원전 106~43)는 그의 나이 62세 되던 해에 쓴 '노년에 관하여'란 책에 적었다.
겨울날씨는 역시 냉정하다. 길 위의 사람들 표정도 얼어 있다.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어깨를 움츠린 노인이 미끄러운 언덕길을 조심조심 걸어내려 오고 있다. 굳이 지난 세월의 무게를 의식하지 않는다 해도 참으로 조심 또 조심하며 살아가야 하는 때가 온 듯하다.
나이 들면 누구나 어린아이가 된다고 그랬던가.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처럼 서투른 걸음걸이가 불안해 보여 영 어설프지만, 이처럼 퇴행성 변화로 인한 걸음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골절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고 책을 조금만 읽어도 쉽게 눈이 피로하다면 책 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신문을 읽을 때도 큰 타이틀만 훑고 속 내용은 대충대충 보는 것이 좋다. 눈으로 읽기보다 마음으로 읽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해서 여태까지 누리고 보아왔던 영광과 행복, 더러움과 메스꺼움,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고통까지도 차라리 감사해야 되지 않을까.
퇴행성 눈의 변화, 그것은 보기 싫은 것 그만 보라는 배려이면서 그 동안 많이 사용한 눈에 휴식을 주려는 자연의 섭리이다. 아마도 눈 감고 볼 수 있는 수많은 장면들이 파도의 물비늘처럼 아름답게 일렁이는 모습을 즐기라는 신의 선물은 아닐는지.
더구나 젊을 때와 달리 무릎이 시리고 손가락 마디가 아프며, 어깨가 결려 병원에 가보면 특별한 병명도 없이 그저 '퇴행성 변화'라는 의사의 진단이 못내 찜찜하게 느껴진다.
오로지 앞만 바라보고 너무나 바쁘게, 또 급하게 숨가쁘도록 달리며 살아 온 삶이 어느새 노년이라니. 그러나 어쩌랴. 젊을 때는 그리도 더디게 움직이던 시계가 지금은 발통을 달았는지 지나 온 세월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저만큼 앞서 달리고 있다.
그 결과 무릎의 관절은 당연히 '퇴행성 변화'를 일으키게 되었고, 또한 남보다 한 움큼이라도 더 잡으려다 보니 혹사당한 손가락 마디마디는 기어이 퇴행성관절염을 앓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남보다 더 가지려 안간힘으로 무거운 짐을 져 상한 두 어깨는 또 어쩌고.
'귀가 어두운 노인들이 장수한다'는 말이 있다. 바깥세상의 듣기 싫은 온갖 소리 못 들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대신 몸 안에서 울려나오는 영혼의 울림을 들으니 어찌 마음이 맑아지지 않겠는가.
산이 좋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등산가들을 본다. 키케로의 말대로 닥쳐 올 '노년의 짐'을 지고 산으로 산으로 오르곤 하지만 우리가 800세를 산다고 여든을 살 때보다 그 노년이 덜 부담스러울 것이라 여기지는 않는다.
아무리 긴 세월을 흘러 보낸다 해도 흘러간 세월이 위안이 되어 어리석은 자의 노년을 가볍게 해주지는 못하리라. 또 경험 많은 등산가들은 산에 올라갈 때보다 산을 내려올 때 더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한발자국 또 한발자국, 조심조심 살얼음 위를 걷듯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퇴행성 변화는 순리고 자연이다. 노년의 일부며 축복이다. 이제는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몸을 아끼고 보호하라는 자연의 가르침에 귀 기울일 때다. 우리를 키워 준 부모님의 땀과 정성과 눈물 그리고 기도에 감사하며 학교와 사회의 가르침 안에서 성장한 고마움을 돌아보자.
사람으로 살아온 일, 서리 내린 머리칼에 비치는 노을빛이 얼마나 눈 부시는지, 젊을 때의 강인함과 쾌락보다 노년의 명예와 덕이 더욱 가치 있음을 순명으로 깨달아야 할 새해의 벽두이다.
윤성도(시인·계명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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