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갈길 바쁜 국정, 개헌이 발목 잡아서야

국정홍보처가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군인들에게까지 국민투표법 위반 논란을 빚고 있는 4년 연임제 개헌안 홍보 메일을 발송해 말썽이다. 지난 3일까지 6만 건 가까운 홍보물을 보냈다고 한다. 지난 3월에는 행정자치부, 국세청 등 10개 부처와 외청이 341만 명을 대상으로 메일을 보냈고, 국정홍보처는 8쪽 짜리 개헌 홍보물 85만부를 신문 삽지로 돌렸다. 개헌안 국회 통과가 안 될 줄 뻔히 알면서 국민을 넌더리나게 스토킹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5일 연임제 개헌안을 18, 19일쯤 국회에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심사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국민이 목마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강제로 물을 먹이겠다는 무모한 발상으로 비쳐진다. 지난 4년간의 학습으로도 정치의 순리와 역리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인가.

우리는 지금 개헌논의와 같은 정치놀음에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다. 4월 국회에는 한미FTA 대립, 사립학교법 재개정안, 국민연금법 개정안, 사법개혁법안과 같은 민감하고 복잡한 국정현안들이 기다리고 있다. 정치적 안정과 정부 재정건실화, 개방화 대응을 위해 머리를 싸매도 문제를 풀까 말까한 난제들이다. 이런 계제에 정부가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개헌안을 들이미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개헌안 부결을 위해 부나비처럼 뛰어드는 정부도 정부지만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예산낭비와 시간, 정력의 낭비가 안타깝기 짝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한미FTA 타결을 계기로 심기일전,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 최근의 대통령 지지도 급상승이 말해주듯 국민들은 정치와 정책의 실용성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의 개헌안 발의는 空論(공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이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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