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라는 책에서 진중권이 들려준 이야기인데요.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원거리 지각 능력은 점점 쇠퇴한다고 합니다.
일본의 NHK에서 이른바 문명인과 비문명인의 시각 능력을 테스트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멀리 떨어진 곳에 방송용 차량을 세워놓고 그 위에 사람이 올라가 여러 가지 제스처를 취하면, 육안으로 그것을 보고 그 동작을 흉내 내도록 하는 이 실험에서, 시력 2.0을 자랑하는 일본인들은 대부분 실패했지만 마사이족은 허리가 굽은 할머니부터 아주 어린 아이까지 몇 킬로미터 밖의 동작을 어렵지 않게 식별해내더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명인의 경우, 원거리 지각 능력이 쇠퇴하는 대신 근거리 지각 능력은 더욱 발달하여 쾌, 불쾌의 감정은 극도로 예민해 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 재구조화 현상은 문명화를 통해 인간의 생활공간이 원시의 넓은 자연에서 도시의 좁은 공간으로 축소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좁혀지고, 인공의 불빛은 더욱 밝아져 도무지 숨을 곳이 없는 시간 속에서 각박하게 살아가다 보니, 정말 사소한 이유로도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것이 아닐까요? 복잡한 거리를 지나가다 어깨가 부딪쳐도 시비가 붙고, 그냥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도 째려본다고 주먹이 오가고, 서로 빨리 가려다가 충돌하여 찌그러진 차를 복잡한 네거리에 그냥 세워 둔 채 운전 똑바로 하라며 삿대질을 하고, 하필이면 자기와 스쳐지나가는 순간에 큰 방귀소리를 내느냐며 멱살을 잡는…등등등.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네 각박한 삶 자체가 어쩌면 서로에게 폭력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 특성이 폭력이라는 인식은, 이 세상의 어느 인간 생명도 폭력에 의해 훼손되거나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도덕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일상의 삶터에서 서로 접촉할 때 생길 수 있는 오해와 갈등과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진정으로 조심하고 또 세심하게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그 구체적 행위가 바로 '웃음'을 건네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더라도 '나는 당신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표시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웃음이며 인사라지요. 손을 들어 공격 무기가 없음을 보여주다가 반갑다며 빈손을 마주 잡고 흔드는 것이 악수라지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폭력을 추방하자는 구호가 울긋불긋하게 새겨진 현수막을 허공에다 요란하게 매달아 폭력적인 풍경을 연출할 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조심과 배려와 존중의 마음으로 웃으며 인사하는 예절부터 다시 배우고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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