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상자 밖으로 나오기

한밤중에 갓난 아기가 배가 고파 울고 있다. 아이 엄마는 하루 종일 아이 때문에 시달려서 곤히 잠들어 깨지 않는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남편은 누워서 잠시 고민한다. "모른 척하고 잘까. 아이가 더 심하게 울면 아이 엄마가 일어나겠지. 아니면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아이에게 분유를 먹일까."

그런데 많은 아빠들은 모른 체하고 아이 엄마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그대로 잠자는 척한다. 그냥 모른 체하고 누워 있는 행동. 옳은 일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인간은 자기배반에 빠진다. 그리고 힘겹게 일어나 우유를 먹이는 아이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자기기만을 통해 해결한다.

"나도 낮시간 동안 일하느라 피곤하고, 힘들었으니까 자도 괜찮다."라고 합리화하고, 만약 아이 엄마가 화를 낼 때는 자기배반은 생각조차 않고, 자기기만에 빠져 오히려 당당해진다. 아빈저 연구소가 지은 '상자 안에 있는 사람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이라는 책의 일부 내용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부부는 서로에게 자기기만에 빠져 상처를 준다. 이럴 때면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자기배반과 자기기만을 합리화시켜 줄 대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자기배반과 자기기만에 빠져 상자 안에 있는 사람은 하루 빨리 상자 밖으로 나와야 한다.

과연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사람이 자기배반과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은 잘못을 고백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고백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이익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여 년 동안 민주화 과정에서 좌와 우가 심각하게 날을 세우고, 때로는 서로 상처를 입히는 홍역을 치렀다.

아직도 그 여진이 남아 있다. 과거 주류들은 향수에 젖어 시대변화에 둔감했고, 잘못을 고백하는데 인색했다. 신주류로 등장한 사람들은 승리의 자신감에 빠져 반대편 사람들도 함께 살아가야 할 국민이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급기야 정치권은 서로의 정신건강까지 들먹이면서 정쟁에 빠졌고, 생산적인 대안을 기다리는 국민들은 지쳤고, 실망하다가 포기했다. 대통령이나 야당이 본업은 뒤로하고 상대의 흠이나 꼬투리잡아 욕하고, 상대의 실패에 자신의 지지율을 의존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앞선 세대를 보수나 수구로 비판했던 소위 386들도 자기배반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현재 과연 비판의 대상자들과 무엇이 다른지, 오히려 더 이중적이고, 더 도덕불감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투기의 불로소득을 은근히 기대하고, 정부실패에 가담했던 적은 없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상자 안에서 자기배반과 자기기만행위를 각자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바야흐로 대선정국이다. 현 정권의 잘잘못을 떠나 지난 참여정부 기간 동안 우리 사회는 갈등의 꼭대기까지 오르는 경험을 했다. 그 과정에서 좌와 우, 신·구세대, 중앙과 지방 등 다양한 형태의 갈등이 표출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제대로 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람과 사회는 경험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발전할 수 있다. 우리는 편을 갈라 서로 부정하는 행위를 반복해서는 미래과제를 이룰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제 갈등을 풀었으면 한다. 젊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보릿고개를 넘어 산업화의 도로를 닦아온 어른들의 고단한 삶을 인정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어른들은 지난 시대 미처 살피지 못했던 일들을 후배들이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믿음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후배들이 민주화, 인권, 통일을 당돌하게 이야기할 때에도 사회발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선해해 주었으면 한다. 노사관계,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도 이렇게 갈등을 풀었으면 한다. 그래서 차기 대통령은 대립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자기배반과 자기기만의 상자 안에 갇혀 있는 우리 사회의 조직, 사람들을 상자 밖으로 나오게 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상자 밖에서 사회 대통합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그러려면 사회갈등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배반과 자기기만을 부끄러워하는 정직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할 것이다.

남호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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