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이언스 레터)영재 교육에 대하여

맹자는 일찍이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군자의 즐거움이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여기서 영재란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닫는 똑똑한 이를 일컫는 말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참 귀할 것 같은 영재들을 너무나 많이, 자주 보게 된다. 왜 그리 영재가 많은지.

엄밀히 말하자면 개인마다 얼굴과 성격이 다른 것처럼 학생들은 모두 각각 다른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무시하고 동일한 환경에서 똑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재 평준화 제도하의 학교 수업이다. 배우는 학생들도 힘들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들도 난감하다. 학생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라 수업의 수준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고민스러운 것이다.

결국은 수업을 오래 하면서 얻은 경험으로 일정 수준의 선을 가지고 수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일정 수준의 선이란 게 우수한 학생에게는 부족하고 성적이 좀 떨어지는 학생들에게는 앞서가는, 그래서 모두를 외면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평준화 제도의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우수한 학생일수록 피해가 크고, 이는 곧 뛰어난 자질을 가진 영재들의 능력을 이용하지 못하는 국가적 손실로 이어진다.

교육부가 평준화를 유지하면서 영재 교육, 수준별 이동 수업, 특목고 조기 진급·졸업제 운영, AP제 운영 등 이른바 수월성 교육 대책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수한 인재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즘 뛰어난 인재를 교육하고 양성하는 영재 교육은 분명 필요하다.

학부모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하지 않는다.', '어릴 때는 똑똑하단 말을 들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집중을 하지 않는다.'는 등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 즉 내 아이는 똑똑하고 머리가 좋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또래와 다른 어떤 말이나 행위를 계기로 내 아이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다. 이렇게 똑똑한 아이를 방치하는 것은 부모의 잘못이라는 조바심도 느낀다. 이런 조바심은 내 아이에게 좀 더 수준이 높은 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의무감이 되고, 아이 문제라면 언제 어디든 쫓아다니는 열성이 된다. 이따금 우리 아이보다 떨어져 보이는 옆집 아이의 선행학습 진도가 빠르고, 앞집 아이는 영재반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답답함에 밤을 새우기도 한다. 이러는 가운데 영재 만들기라는 새로운 교육열풍이 생긴다.

'내 아이가 영재라면' 하는 기대감은 자녀 교육에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사람이라도 부모로서 한 번쯤은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이 오히려 소중한 내 아이를 주눅 들게 하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영재는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오는 것이다. 갖고 싶다고 노력해도 획득되는 게 아니고, 내가 무관심해서 키워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영재성은 없어지는 게 아닌데 그리 조바심을 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은 영재보다 평범한 사람이 많다. 아무리 유명한 건축가의 설계도가 있더라도 그 건물은 다른 많은 사람의 노력에 의해 수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영재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땀에 의해 이루어진다. 영재가 중요하듯이 평범한 사람도 중요한 것이다.

며칠 전 부산의 한국과학영재학교 시험이 치러졌다. 그 시험을 통해 어쩌면 묻혀버렸을지 모를 귀한 영재가 발굴되어 우수한 교육을 통해 미래에 많은 일을 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의 영재성과 그 영재성을 지켜볼 수많은 평범함에도 똑같은 희망과 기대를 보낸다.

차정록(차선생 과학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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