栗谷(율곡) 이이는 경기 파주군 파평면 율곡리 출신이다.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친정 강릉에서 6살 때까지 살다가 율곡리로 건너와 성장기를 보냈다. 장성한 뒤 과거에서 9번 연거푸 장원을 차지한 천재였다. 34세에 홍문관 교리로 있을 때 요즘의 안식년인 賜暇讀書(사가독서)를 받아 東湖問答(동호문답)이란 월례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주인과 손님의 문답 형식으로 율곡의 정치관을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 율곡은 현실정치의 과제로 민생, 풍속, 선비들의 행태, 사회기강 4가지를 들었다. 민생이 곤궁하고, 풍속이 야박하고 거칠며, 지식층이 바르지 못하고, 기강이 바로 잡히지 않은 상태를 난세로 본 것이다.
율곡의 기준을 오늘에 적용해보면 어떤 결과가 될 지 궁금해진다. 민생에 있어서는 중산층의 붕괴가 난정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자영업자의 몰락이 그 뚜렷한 방증이다. 전체 취업자 중 금년 1/4분기의 자영업주 비율은 25.8%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양극화도 심화돼 2004년의 지수는 97년의 2.4배에 달하고 있다. 신규유입 민생이라 할 수 있는 청년실업은 이미 도를 넘었다. 새로운 세대 구성의 경제적 바탕이 거덜 난 것이다. 정부가 밝힌 2006년 말 청년실업률은 7.9%지만 통계 산출방식을 제대로 적용하면 20%, 100만 명을 넘는다.
풍속 부분은 좋아지고 있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잘못된 교육제도 탓으로 초중고 교육현장에서는 인간교육, 인성교육이 사라진 지 오래다. 사회단절, 전통의 붕괴를 걱정해야 될 정도다. 기성사회는 탐욕증, 이기증, 난잡증 등 온갖 악덕으로 물들어 있다. 악귀들의 지옥이 이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조를 비롯한 대기업 노조들의 도덕적 파탄은 심각한 수준이다. 자신들의 배부른 투쟁으로 약자들의 등골이 빠져도 오불관언이다. 전국공무원 노조 총연맹이 최근에 내놓은 교섭내용은 눈 뜨고 봐주기 어렵다. 마을에 궁핍이 들면 숟가락질 소리도 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공무원 노조 요구를 보면 어려운 이웃에 대한 배려는 약에 쓰려 해도 찾아볼 수 없다. 실업자들이 넘쳐나는 마당에도 스스로 자족, 겸양할 줄 모르고 내 배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도덕 불감증이 하늘을 찌른다. 교사들도 사회추세인 직무평가를 거부하고, 어떻게든 책임 안지면서 편하게 돈 많이 받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 사회의 붕괴 조짐으로 불러서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나라의 양심이라는 지식층들은 바르게 행동하고 있는 것일까. 돈과 권력 따먹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만 눈에 뜨인다. 교수사회를 예로 들면 대선 줄 대기에 나선 정치교수(폴리페서)가 공개된 숫자만도 530여명에 달한다. 그늘에서 움직이는 사람들까지 보태면 줄 안대고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의심될 정도다. 사회의 소금이 돼야할 언론, 특히 공영방송은 편파, 불건전, 도덕적 해이에서 헤어나지 못 한다. 정치권 등 여타 지식인 사회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라의 스승 될 엘리트들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국가위기를 방어해야 할 공직자들의 기강은 또 어떨까. 청와대와 정부는 인성 부적격자들로 들끓고 있다. 공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사들이 나라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언행의 모범을 보여주기는커녕 막말에 싸움질, 선거개입, 헌법 유린 등의 망동을 예사로 한다. 국가 안보를 책임진 국방부는 가상적국의 군사행동을 비호해주기에 여념이 없다. 국민의 눈과 귀가 돼야 할 국정원은 야당 뒷조사나 하는 정권 친위대 노릇을 하고 있다.
민생, 풍속, 지식인, 기강 어디를 둘러봐도 난세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율곡은 난세와 치세는 사람에게 달린 일이며, 때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또 군주의 지혜와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난세는 대통령의 자질과 그릇에서 비롯되는 바 크다. 실제로 그는 민생이나 풍속, 지식인의 도리, 기강 어디에서도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오로지 이념과 정치투쟁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대통령이 이러니 장관이 그렇고, 장관이 그러니 공직 말단, 더 나아가서는 국민들까지 난세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무너지는 사회체제와 대책 없는 정권, 이것이 2007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그 치다꺼리가 국민의 발등에 떨어진 것이다.
박진용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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