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1959년)이란 희한한 영화가 있었다.
거창한 제목의 이 SF영화는 할리우드 역사상 최악으로 손꼽힌다. 비행접시를 타고 온 외계인이 시체를 살려내 지구 정복을 꾀한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그렇지만 제작상 허점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한 장면 속에 낮과 밤이 같이 나오고, 마분지로 만든 묘비가 쓰러지고, 좀비역의 배우가 문을 잘못 찾아 벽에 부딪치기도 한다. 연출과 편집은 물론이고 조명과 연기, 세트의 조잡함은 끔찍한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최악임에도 '전설'이 됐다.
그건 감독 에드워드 D. 우드라는 '기인'의 거침없는 열정 때문이었다. 남의 창고에 도둑처럼 들어가 2, 3일만에 '날림'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는 영화를 향해 끊임없이 열정을 불태웠다. 영화를 만들 수만 있다면 영혼까지 팔았을 정도다.
미국의 한 평론가는 그에게 '작가'라는 칭호까지 부여했고, 팀 버튼 감독은 1994년 '에드우드'라는 영화에서 그의 열정을 걸작 '시민케인'의 오손 웰즈와 같은 무게라고 칭송했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23일 한국에서 첫 시사회를 가졌다.
순수제작비 300억 원에 할리우드 배우와 스태프를 기용해 6년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제작비도 사상최대 규모지만, 미국에서 1천500여 스크린에 걸리는 것도 한국 영화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디 워'는 사실 제작과정에서부터 말이 많았다. 1999년 '용가리'의 악몽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심 감독은 당시 신지식인으로 선정돼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라 안 하니까 못하는 것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100억 원을 들여 미국 배우를 기용해 만든 '용가리'가 미국에서는 개봉도 못하고 한국에서도 흥행에 참패했다. 거기에 평단의 혹평까지 받았다.
'디 워'도 시사회 후 절반의 성공이란 평이 대체적이다. 볼거리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이야기 구조가 허술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 완성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에드워드 D. 우드처럼 영화를 '날림'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는 더구나 아니다.
그가 쏟아낸 열정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디 워'를 만들기까지 그는 '사기꾼'으로 몰리기도 하고, "코미디언이면 웃기기나 할 것이지."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디 워'의 엔딩 크레딧에는 '아리랑'이 흐른다. '트랜스포머' '아일랜드' '진주만' 등 스케일이 큰 할리우드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스티브 자브론스키가 맡았다. 드래곤도 서양의 용이 아니라 우리의 이무기다. 또 초반 20분은 한국어 대사를 그대로 살려냈고 미국 개봉에서는 영어 자막이 들어간다.
특히 할리우드 전유물이던 CG(컴퓨터그래픽) 기술을 개발해 노하우를 쌓은 것은 가히 입지전적이다. 이제까지 어떤 한국영화도 못 한 일이다.
그는 '영구야'라는 특유의 바보 연기로 인기를 얻은 코미디언이었다. 1988년 영구 아트무비를 '티라노의 발톱'(1994년) '파워킹'(1995년) 등을 만들며 아동용 SF영화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진지한 비평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한 지인이 영국의 뒷골목 연극을 보고 와서 들려준 이야기는 잊을 수 없다. 아마추어 연극에 런던 관객이 열정적으로 박수를 보내는 것이 의아했다. 그래서 "연극이 완벽하지도 않은데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모르는 소리 말아라. 저 속에 위대한 셰익스피어가 있을지 모르잖아."
재능은 열정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성공이란 엔진의 최고의 연료도 바로 열정이다.
한때 우리 시대의 광대가 보여준 열정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김중기 문화부차장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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