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기구한 운명

영국인 브랜드릭(62) 씨는 2년 전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췌장암을 선고받았다. 남은 삶이라도 마음껏 살기로 작정, 직장을 그만두고 재산을 정리한 뒤 고급 호텔을 찾아 비싼 음식을 즐기고 각지를 여행했다. 자동차와 옷은 처분하고 대신 자신의 장례를 준비했다. 하지만 일년여를 그러고 보냈는데도 몸이 멀쩡했다. 재검진에서 밝혀진 진짜 병명은 단순 췌장염. 아니, 재산이란 재산은 모두 소진해 버렸는데 이제 와 암이 아니라니! 브랜드릭 씨는 화가 나 지난 5월 소송을 제기했다.

말레이시아인 마리얌은 1939년 당시 남편과 사별한 세 아이의 25살짜리 엄마였다. 하지만 세계대전 와중에 기구한 운명의 길에 구겨 넣어졌다. 수용소에 붙잡혀 갔다가 거기서 만난 한국 남자를 따라 전라도까지 흘러들었다. 여기서도 6'25가 터졌고 다시 홀몸이 됐다. 서울 땅의 이방인 식모로 흘러 다니다 숨진 안주인의 부탁에 따라 여러 아이들을 맡아 돌보는 남의 엄마가 됐다. 그리고 이제 87살. 그러나 할머니에겐 지금껏 국적이 없다. 주민등록이나 의료보험은 물론일 터. 지난주 TV에 소개돼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던 이야기이다.

김모 씨는 1950년대에 아버지가 실종되고 이어 어머니가 개가해 숙부 밑에서 자라야 했던 불우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불행의 신은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1969년 3월 군에 입대한 김 씨를 지금껏 돌려 보내주지 않고 있다. 3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군 문서에 '현재원'으로 표시돼 있을 뿐 행방을 아는 이 없는 것이다. 하나 남은 형님의 혈육을 돌봐야 하는 작은아버지의 심정이 오죽했겠으며, 지금껏 군에 행방을 물은 것이 무릇 몇 번이나 됐을까. 하지만 국가는 묵묵부답이었고 그는 잊혔으며 작은아버지만 가슴을 칠 뿐이었다. 이 달 초 알려진 또 하나의 기막힌 사연이다.

브랜드릭 씨 운명도 기구하지만 그래도 죽다가 되살아난 형국이니 그나마 다행일 터. 마리얌 할머니의 한 평생 또한 너무도 기막히지만 뒤늦게나마 다시 아들딸을 만나게 됐으니 어쨌든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김모 씨 이야기는 극적 긴박감이 훨씬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더 가슴을 할퀸다. 한 개인 운명의 기구함에 그치는 사안이 아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나서 줘야 할 유사한 일이 또 없는지 모르겠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