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지를 찾아서] 불교 성지(16)-부산 범어사

3칸 일주문 너머 거기, 해탈의 물고기 노닐다

세상이 시끄럽다. 청정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에게 민망하게 불교계 일부 인사들도 소란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문득 해방 직후 한국 불교계에서 만연하던 왜색풍을 몰아내고, 비구-대처 간 대립을 마무리한 불교정화운동의 주역이었던 동산 스님이 주석하던 부산 범어사가 그립다. 그곳에 가면 아수라장 같은 세상이 맑아지고, 해탈의 가을바람을 쇨 수 있을까?

◈사바세계에 찌든 사부대중을 반겨주는 곳

카메라를 들고 KTX에 몸을 실어 부산으로 내려갔다. 지하철 부산역사에서 노포동행 편도 2구간 지하철 티켓을 사서 십여 정거장 30여 분을 가니, 종점 바로 한 역 못 가서 범어사역이 나온다. 범어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정보대로 범어사역에서 내려, 5분 채 못 걸으니 범어사로 오가는 90번 시외버스가 기다리듯 대기하고 있다. 범어사로 가는 사람들로 차는 금방 꽉 찬다. 그만큼 범어사는 사바세계의 온갖 고민 근심 질병 가난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포근히 감싸안아주는 곳이어서 일까? 빼곡히 사람들로 들어찬 시외버스는 부산의 진산, 금정산(金井山)을 향해 올라간다. 산의 초입을 아파트들이 점령하고 있는데도 공기가 다르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동국의 남단에 명산이 있어서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의 거암이 있고, 그 바위 한가운데에는 샘이 있는데, 물빛이 금색이고 금빛 물속에 범천의 고기가 놀았다는 곳이 바로 범어사가 자리 잡고 있는 금정산이다. 그러나 금정산 정상을 오르지는 않았다. 범천의 물고기가 노닌다는 금샘의 이야기를 영원히 내 맘속에 살려두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천연기념물 등나무 군락 산책로에서 만난 부도탑

범어사 일주문을 향해 올라가니, 마침 범어사 개산 1329년 기념 선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모든 사찰마다 일주문이 없는 곳이 없지만, 나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을 지닌 범어사 일주문을 가장 좋아한다. 그 일주문이 바로 눈앞인데, 범어사의 입구 천연기념물 군락인 등나무 산책로에서 명상걷기대회가 열린다고 안내한다. 이 길을 따라가면 50, 60년대 불교계 정풍운동을 주도했던 동산 스님을 비롯한 범어사 문중 스님들의 부도탑도 있지 않은가? 따라가 보았다. 경주 골굴사 선무도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세계 불무도협회총재 안도 스님이 인도에 나섰다. 자원봉사자들이 짐을 맡아준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카메라와 볼펜 한 자루만 지닌 채 걷는다. 어린아이부터, 연세 지긋하신 분들까지 함께 마음을 탁 놓고, 5천600여 그루 천연기념물 등나무로 이뤄진 산책로를 걸으니 누구 하나 땀흘리는 사람도, 누구 하나 돌부리를 차서 넘어지는 사람도 없다. 걷는 매 순간이 평화이고, 무상이다. 그저 가을 속으로 깊어가는 대지에 입맞추는 산책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 것을 일상에서는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육체는 스러지면 마른 풀처럼 물질로 돌아가리니

세상 만물은 다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四大)로 이루어졌다. 발 아래 스러지는 저 까칠한 풀과 우리 몸이 다를 리 없다. 육체는 죽으면 지수화풍, 즉 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물질로 돌아가는 것이니, 소중한 것은 육체를 떠난 영혼이다. 열반 이후 영혼만 불국토 어디에 있을 스님들의 부도탑을 만난다. 부도탑 앞에 서니 생사가 무상하다. 생사(삼사라)와 열반(涅槃, 니르바나)이 항상 같이 이룬다(生死涅槃相共和)는 법성게가 떠오른다. 마음속에 있는 것이 이뤄진다고 했던가? 경쟁과 성급함을 놓아버린 명상걷기로 여유로운 마음을 지닌 채 돌아나오니 일주문이다. 속계와 불계를 경계 짓는 범어사 일주문은 팔공산 파계사처럼 기둥 2개 1칸짜리 일주문이 아니라 4개의 기둥이 일렬로 늘어선 3칸식 일주문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일주문 기둥이 돌과 나무로 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지름 1m가 넘는 배흘림 돌기둥 위에 짧은 목재 기둥을 세웠다. 독특하고 예쁘고 푸근하다. 이날 일주문 돌기둥은 사진에서 보듯이 일주문에서 열리는 다비장을 보러 나온 수많은 인파 속에 묻혀버렸다. 범어사 일주문 중앙에는 조계문(曹溪門), 좌우에는 '금정산 범어사'(金井山 梵魚寺)와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범어사가 선수행 도량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범어사내 선원이 9개나 될 정도로 선풍 날려

범어사에 선원이 개설된 것은 지금부터 108년 전인 1899년 겨울이다. 그해 성월 스님이 범어사 산내암자인 금강암에 금강선사를 개원하였고, 곧 이어 안양선사, 내원선사, 계명선사가 잇따라 들어섰다. 1903년에는 경허 스님이 계명암에서 한국 근대불교의 선풍을 드날렸고, 1910년에는 금어선사가 범어사내에 개설되었다. 조계종을 청정수행풍토로 불리게 하는 근간이 되는 선을 범어사는 근본으로 삼고 소중하게 여겼다. 선에 대한 인식은 범어사 내원선원청규로 이어졌고, 1911년에는 드디어 범어사가 한국불교 선종의 수사찰로 인정받게 되었다. 20세기 초 범어사에서는 9개의 선원이 운영되었고, 금어선원은 1929년 동안거 결제를 동산 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거행했다. 불도가 일본이 강하지만, 도저히 한국불교를 따라오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한국불교의 선을 중심으로 한 청정수행풍토이다. 범어사의 힘을 느끼며, 일주문을 들어선다. 불자들은 다시 태어나면 불국정토에 나기를, 불국정토에서 부처와 하나가 되기를 염원하며 일주문을 들어설 것이다. 인과법과 십선과 보리심을 떠올리며 일주문을 들어선다.

◈세속 번뇌로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세속 번뇌로 부산하게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느끼며 대웅전으로 향하였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목, 일주문 다음에 만난 천왕문에는 목조 사천왕상이 있다. 누가 착한지, 누가 나쁜지 다 가려내고 상벌을 따로 준다는 사천왕상을 슬쩍 올려다보고, 불이문으로 향한다. 신라고적기는 의상대사가 범어사 창건주임을 적고 있다. 의상대사가 지은 범어사 원 절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전소했고, 광해군 시절 여러 스님들이 노력하여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이때 땅속에서 미륵이 솟아나 새롭게 모시니 지금의 미륵전이다. 그런데 이 미륵불은 정면이 아니라 오른쪽 벽에서 왼쪽 벽을(대웅전 방향) 바라보고 있다. 이는 왜(倭)를 등지고 앉았음이다. 미륵전 옆 비로전을 보고 다시 미륵전 앞 삼층석탑과 마당 반대편 쪽 석등을 살펴보고 보제루 정면 계단을 올라 대웅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범어사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이 있다.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18아라한을 모신 나한전,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 인도승 달라바라가 주고 간 석가모니 사리를 봉안한 칠층사리탑 등을 보고, 다시 팔상전, 독성각, 나한전이 동시에 들어있는 법당을 본다. 아치형 문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각 하나하나가 손길이 많이 갔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문 좌우에 아주 작게 조각되어 있는 남녀 인물상은 단청이 바랜 색감으로 민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창건 당시의 유일한 유물인 삼층석탑

대웅전을 바라보며 오른쪽에 서 있는 삼층석탑은 679년 신라 문무왕이 봉안한 창건 당시의 유물로 유일이다. 보제루와 나란히 서 있는 범종각에 모셔진 범종의 용누는 비천상의 용을 새긴 에밀레종과는 달리 사방에 한복을 입은 여인이 불공을 드리는 모습을 아로새겼고, 밑부분에는 풀잎이 새겨져 있어서 독특하다. 부처님은 마음에 있는 것이 이뤄진다고 하였다. 마음에서 생각함으로써 일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번뇌에 가득 찬 인생이지만, 참답게 살려는 마음으로 정진한다면 그 속에서 진여불성의 빛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범어사를 떠나는 발길이 가볍다.

글·사진 최미화기자 magohalm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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