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탄, 그 추억과 눈물

◆연탄의 역사

세기 말 일본 큐슈 지방 모지시에서 사용된 '통풍탄' 또는 '연꽃연탄'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다. 당시 주먹만한 크기의 석탄에 구멍을 낸 탄을 목탄 대신에 사용했다. 구멍이 뚫린 모양이 연꽃열매 모양을 닮아 연꽃연탄으로 불렀다고.

이후 1907년 제조기가 발명되면서 본격 제조를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는 1920년대 후반부터 평양광업소에서 제조한 관제연탄이 처음 사용됐다. 벽돌과 비슷한 모양에 2, 3개 구멍이 있는 연탄이었다. 대부분 일본인 가정을 중심으로 공급됐다. 1930년대부터 연탄이 본격 제조됐는데, 부산에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삼국상회가 9공탄을 만들었다. 민족자본으로 최초의 연탄 제조업체는 1947년 설립된 대성산업. 1960년대는 국내 연탄산업의 전성기였다. 1963년 말 연탄공장은 군소 규모를 합쳐 모두 400여 개에 달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어머니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 두 가지를 꼽으라면 김장과 연탄이었다. 김장 몇 십 포기 담그고, 연탄 몇 백 장을 광에 쌓아놓으면 흐뭇한 표정으로 겨울 준비를 마쳤다고 말씀하곤 했다. 동네 연탄가게 아저씨와 평소 친분을 돈독히 해두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행여 신경을 거슬렀다가는 배달도 늦어지고, 계단을 올라야 하느니 꼬불꼬불 오르막길이 힘드니 하면서 괜한 트집을 잡아 장당 배달료가 올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탄 아궁이 크기에 딱 맞는 양은냄비로 끓여내는 라면이 겨울밤 김장김치와 어울어지면 그 맛은 가히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 학교 앞에서 팔던 '달고나'를 집에서 만들어 먹겠다고 국자에 설탕을 녹여 소다를 부었다가 끓어넘치는 바람에 국자도 망치고 온 집안에 설탕 타는 냄새가 진동하던 기억도 누구나 한 번쯤은 갖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 시커먼 연탄 속에 묻혀버린 눈물겨운 사연은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하루가 머다하고 신문이며 방송에서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일가족 사망'이라는 소식이 들려왔고, 연탄가스를 마셔서 넋을 놓아버렸다는 사람이 동네마다 한 명씩을 꼭 있게 마련이었다. 사람들은 가스에 중독되면 무조건 동치미 국물을 먹여야 한다고 믿었고, 때문에 겨울 김장을 담가놓고 동치미 담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1984년 3월 20일자 모 일간지 머릿기사의 제목은 '연탄가스 무방비 30년'이었다. 작은 제목으로 해마다 100만 명 중독, 3천여명 사망이라고 쓰여있다. 또 1986년 10월 20일자 매일신문 기사를 보면,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자료를 인용해 연간 126만 명이 중독되고, 이 중 4천200여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전했다. 불과 20년 전 일이었다.

게다가 연탄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연료였다. 새벽 단잠을 깨고 온몸을 휩싸는 한기에 몸서리를 쳐가며 연탄을 가는 일은 매일 반복되는 곤역이었다. 연탄가스를 마셔가며 구멍을 나란히 정렬하는 섬세한 작업도 필요했다. 행여 연탄 수명을 연장해보겠다고 불구멍을 막아놨다가는 겨울 밤 내내 온가족이 서로 이불을 뺏다시피 둘둘 말고 자야하는 불상사가 벌어졌고, 뜨끈하게 자 보겠다고 불구멍을 환하게 열어놨다가는 새벽 연탄 가는 시간을 놓쳐서 이웃집에 연탄 불씨를 빌리러가는 쑥스럼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 연탄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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