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반도 대운하] ①황금 수로의 재현-中 징항운하

베이징~항저우 1794km 중국내륙 물길로 꿰뚫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간판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나라당이 관련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운하 태스크포스 팀을 설치, 공약 이행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한반도 대운하의 핵심인 경부운하가 관통하는 대구·경북에서도 각 지자체마다 태스크포스 팀을 발족시키는 등 실질적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경제성, 환경파괴 우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찬반 의견이 맞서고 있다. 매일신문은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 해외 사례 등을 중심으로 운하 개발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보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중국에서는 이제 운하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항저우만(杭州灣)에 자리잡은 닝보(寧波)시의 항항(港航)관리국 첸 지에위에(49) 판공실 부주임은 중국의 운하에 대한 관심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지난해 27일 찾은 닝보 시내 곳곳은 2008년 3월 개통 예정인 항용(杭甬)운하의 마무리작업이 한창이다. 강변 한쪽에서는 대형 크레인이 "위이잉" 소리를 내며 임시 부교를 철거하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제방보수 작업을 위해 굴착기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항저우와 닝보를 잇는 항용운하는 닝소(寧紹)평원 97km에 걸쳐 흐르며 닝보지역 구간은 50km쯤 된다. 이들 도시 간 내륙수로는 과거 주요 화물운송로로 활용됐지만 도로교통이 발전하면서 쇠락, 90년대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다가 2000년부터 다시 수로를 직선화하고 넓히는 공사를 벌이고 있다. 닝보시의 경우 모두 90억 위안(약 1조 2천600억 원)을 들여 2007년 연말까지 2차 공정을 끝마치고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위야오(餘姚)시까지 구간을 2008년 3월 먼저 개통할 예정이다. 5개의 갑문과 30여 개의 하역시설이 들어서는 전체 구간은 2008년 6월쯤 완전 개통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첸 부주임은 "내년 개통 구간은 최소 너비 60m, 수심 2.5m 이상으로 500t급 배가 다니지만 저장성 정부의 '항항강성(港航强省) 발전전략'에 따라 1천t급 배가 다닐 수 있는 3급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조만간 닝보항운유한공사를 설립해 500t급 배 40척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항용운하는 사실 만리장성과 함께 초대형 고대 유적의 하나로 꼽히는 징항(京杭)대운하 재연결사업의 일부분이다. 베이징(北京)에서 시작해 톈진(天津), 허베이(河北), 산둥(山東), 장수(江蘇), 저장(浙江) 등을 지나 항저우(杭州)에서 끝나는 징항운하는 세계 최초의 운하로 총길이가 1천794km에 이른다. 하지만 하이허(海河), 황허(黃河), 화이허(淮河), 창강(長江), 첸탕강 등 5대 강을 관통, 남북 교통운수에서 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징항운하 역시 세월이 흐르면서 곳곳이 단절되고 배의 운항이 가능한 곳에서도 통항이 막히는 일이 잦았다. 중국 정부는 이에 따라 오는 2010년까지 모두 490억 위안(약 6조 3천700억 원)을 들여 운하 확대와 준설 작업을 벌이고 있다. 운항 조건과 경제가치가 가장 좋은 저장성이 196억 위안, 장수성이 100억 위안을 투자한다.

서해를 끼고 있는 저장성이 항저우만의 연안수로를 놔두고 내륙수로를 새로 뚫은 가장 큰 이유는 내륙지역의 원활한 화물 운송을 위해서다. 저장성은 원래 석탄·목재 등 자원이 많지않은 지역이라 외지에서 대부분 가져다 쓰는데 기존 도로는 이미 포화상태여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항저우는 수심이 얕아 큰 배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실제로 항주와 닝보를 잇는 고속도로는 최고속도 120km, 왕복 8차로로 건설돼 있지만 넘쳐나는 화물트럭들로 정체를 빚기 일쑤고 항저우는 첸탕강(錢塘江)이 운반한 토사가 두껍게 퇴적돼 항구가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중국 운하 관계자들은 대량 운송에 따른 물류비용 절감 외에도 문화유산·자연을 아우르는 친환경적 수변자원 개발, 대기오염물질 배출이 적은 친환경적 교통수단 육성, 홍수 대처능력 향상 등을 운하 건설의 장점으로 꼽았다.

야오 바이칭(57) 위야오시 교통운수관리소 부소장은 "닝보~위야오 구간을 건설하면서 공장, 주택 등 건축물 3만㎡를 옮겼는데 만약 자동차도로를 건설했다면 훨씬 많은 땅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운하는 물류비용이 자동차의 3분의 1에 불과한데다 물을 가두거나 내보낼 수 있어 홍수에 적절히 대비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도읍이자 중국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루쉰(魯迅)이 태어난 샤오싱(紹興) 같은 곳은 관광객 유치 활성화가 기대된다."라고 덧붙였다.

항저우만 일대 도시들은 항용운하가 지역 경제발전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개방화 이후 급속히 들어선 공업지역에 원자재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가격 안정과 생산성 향상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것. 닝보시의 경우 운하가 개통되면 건설자재, 식량 등 매년 1천만t 이상의 물동량이 운하를 통해 운송될 것으로 전망하고 2012년에는 바다와 내륙수로를 합쳐 3억 8천t의 물동량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야오샹(43) 위야오시 항운관리소 항관팀장은 "근대 이후 도로·철도운수의 발달로 징항운하의 효용은 다소 떨어지기도 했지만 최근 다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수로를 넓히고 있다."라며 "운하 주변 지역은 경치가 좋아 집값이 다른 지역보다 20% 정도 더 비싸다."라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 운하 교통 우리나라에서는…

한반도의 내륙수로도 중국 못지않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주운의 이용이 적지않았음을 증명하는 유물이 많고 고려시대에는 세곡(稅穀)의 운송을 위해 주운의 이용을 제도화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조운(漕運)체계가 붕괴됐지만 일제시대를 거치며 통영운하, 강경운하, 대동강운하 등이 건설됐다.

특히 낙동강 주운의 교통로 기능은 영남지방에서 중앙으로 운송되는 각종 세금을 원활하게 운송할 수 있는 기초적 토대가 됐으며 국가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이었다. 낙동강 권역에는 대구 4곳, 경북 13곳, 부산 3곳, 경남 9곳의 나루터가 있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진주 가산창, 밀양 삼랑창, 창원 마산창 등 3곳의 조창이 운영됐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운하 건설이 논의된 것은 1966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남한강에 팔당댐을 건설하면서 주운에 대비해 갑문시설을 고려하라고 지시했으며 정부는 미국 내무성 개척국 지질조사소와 공동으로 5년 간 대규모 한강유역 조사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당시 경제규모로서는 물동량이 적어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

이후 1980년 미 육군 공병단과 건설부가 공동으로 낸 '남한강 주운계획 예비타당성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1989년에는 건설부·한국수자원공사가 첫 공식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2000년까지 공사비용 9천840억 원을 들여 서울에서 강원도 영월까지 운하공사를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경제기획원이 '타당성은 인정되지만 재정형편상 유보한다'는 결론을 내려 무산됐다. 1996년 세종연구소가 '한강~낙동강 운하 가능성과 내륙 수운체계의 필요성'이란 연구보고서를 내면서 다시 구체화된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1998년 국토개발연구원이 타당성이 낮다는 보고서를 내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상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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