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장님]고령군 쌍림면 귀원리 이장 서계숙씨

부녀회장 거친 군내 첫 여성 이장

고령군 쌍림면 귀원리 서계숙(60) 이장. 첫인상이 농사일 하는 여느 시골 아낙네와는 사뭇 다르다. 곱다. 얼굴도 그을리지 않았고, 손도 거칠지가 않다. 육십이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젊게 보인다. 서 이장은 농사꾼도 아니고, 농부의 아내도 아니다.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마을 이장이다. 그것도 4년째다. "(일을) 잘 할 때까지 하라는 건지 연임(임기 2년)하고 있습니다. 많이 서툴렀는데, 이제 일도 손에 많이 익었어요. 재미도 있고요." 서씨는 지난 2005년 1월 이장에 임명됐다. 고령군에서는 최초 여성 이장으로, 당시에는 화제를 뿌렸다.

"지금은 군내에만 여성 이장이 5명이나 돼 생소해 보이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이슈가 되기에 충분했어요." 서씨는 자신이 이장이 된 이유에 대해 "젊은 사람들이 농사일 때문에 이장 맡기를 꺼려서…"라고 겸손해한다. 그러나 이웃의 반응은 달랐다.

여고를 나온 학벌(?)과 부드러운 대인관계, 그리고 오랫동안 부녀회장을 맡아 마을을 위해 봉사해온 경험 등이 발탁 이유라는 것. 물론 마을 어르신의 추천도 있었다. 얼떨결에 수락했지만 이장 일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네일이며 서류 정리, 계산 등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특히 직불제와 농자금·추곡 수매 물량 배정 등은 힘들었다. 서씨는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 나갔다. 행정 업무는 전임 이장에게서 배우고, 서류 정리 등은 농협에 근무한 적이 있는 남편의 도움을 받았다.

"이장은 일을 잘하기보다 얼마만큼 성의를 가지고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요. 공정하게 그리고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하면 문제될 게 없어요. 그런 면에서 부드러움과 섬세함으로 주민의 다양한 욕구를 행정에 반응시킬 수 있는 여성이 더 제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씨는 별명은 따로 없다. 예전에는 '○○ 엄마' '안동댁'으로 불리다가 이제는 '이장님'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감투를 쓴 것처럼 어색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님'자가 붙으니 몸을 낮추고, 더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다져 먹지요."

서 이장의 고향은 안동시 임동면. 임하댐 건설로 수몰이 되면서 시내 태화동으로 옮겨 살았다.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당시 농협 직원으로 안동에서 근무했던 동갑내기 남편 이강식(60)씨를 만나 1971년 결혼했다.

"신혼 5년을 안동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왔는데,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물도 설고, 낯도 설고, 특히 시집과의 관계 등등. 그러나 30여년을 살다 보니 이곳이 고향이나 진배없어요."

귀원리(貴院里)는 쌍림면 소재지로 면사무소와 농협·경찰서·우체국·초중학교 등 공공기관이 모여 있는 곳. 식당과 다방 등 상업을 하는 사람도 많다. 135가구 중 농업에 종사하는 가구는 50가구 정도. 주로 딸기 농사를 한다. 토박이보다 외지 출신이 더 많은 관계로 인사철이 되면 전출입이 잦은 편이다. 그만큼 화합이 잘 안 되고 통제가 어렵다는 뜻이다.

"적십자회비나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을 거둬보면 성과가 기대만큼 못 미쳐요. 그러나 여자 이장이 앞장서서 하니 잘 도와 주는 편입니다." 서씨는 이장을 처음 시작한 지난 2005년도에 군으로부터 광역상수도 사업비 5천만을 지원받은 것이 기억이 남는다고 했다. 당시 이웃 마을로부터 시샘을 받을 만큼 대단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잘해서 얻어낸 게 아니고 처음 시작하는 여성 이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랬던 것 같다"며 빙그레 웃었다. 서씨는 3년 동안 대과없이 이장직을 수행해오고 있지만 단점이 많다고 했다.

"남들처럼 술도 못하고 로비도 잘 못해요. 그런 면에서 마을 주민에게 미안할 따름이죠. 더 많은 것을 따올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서 이장은 안다. 마을 주민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최일선에서 행정을 빈틈없이 수행하고, 마을 대소사와 궂은일을 도맡아 해야 된다는 것을…. "군내 첫 여성 이장이라는 주위의 관심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고령·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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