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행복의 조건

'戒盈杯(계영배)'라는 것이 있었다 한다.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들여 비밀리에 만든 儀器(의기)에서 유래됐다는데 孔子(공자)가 齊(제)나라 桓公(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사용했던 의기를 보았다고 한다. 밑에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물이나 술을 부어도 전혀 새지 않다가 7할 이상 채우면 밑으로 새어나가게끔 돼있었다는 것이다.

조선조의 도공 우명옥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 배우고 익히면서 스승도 만들지 못한 설백자기를 만들어 크게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고 스승에게 돌아온 뒤 뉘우치는 마음으로 계영배를 만들어냈다 한다. 훗날 이 잔을 갖게 된 거상 임상옥은 늘 이것을 곁에 두고 끝없이 치솟는 욕심을 다스렸다고 한다.

계영배는 곧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돈'지위'명예도 그저 7할 정도 채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2008년 오늘을 사는 우리 한국인의 행복 조건 1위가 '돈' 또는 '돈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가 최근 6대 광역시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행복 키워드' 1위는 '경제력'풍요'였다. 그 뒤로 건강, 가족과 가정, 친구'대인관계, 신앙과 마음가짐 등의 순서가 이어졌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물질에 관한 한 커트 라인이 없어보인다. 돈은 많이 가질수록 미덕이며, 행복 또한 절로 굴러들어올 것으로 여겨지게 됐다. 오늘날 우리는 보릿고개 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잘 살고 있다. 고유가 등으로 살기 힘들어졌다지만 반세기 전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3위 경제대국,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시절에 비해 열 배 스무 배는 더 행복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어쩐지 이전세대 보다 더 행복해 하지 않는 듯하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복닥대느라 온갖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부유한 집일수록 가족 간 재산다툼이 끊이지 않고,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어도 더 외롭다.

'돈'이 행복의 최우선 조건이 될수록 행복에서 더 멀어지는 이 모순…. 마음속에 계영배 하나쯤 둬야 하지 않을까.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